1958년 중앙청에서 열린 공무원들 ‘눈사람 만들기 대회’

1958년 중앙청에서 열린 공무원들 눈사람 만들기 대회 문교부·공보실·법제실 등 부처간 경쟁 열기
조선일보 사진기자들이 1950년대부터 촬영한 필름 약 1200만 컷이 조선일보사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필름들을 디지털화하여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빛나던 순간의 사진들을 조선일보 멤버십 회원분들께 먼저 보여드립니다. 날이 너무 덥습니다. 시원하고 재미있는 장면 하나 꺼내 보겠습니다. 1958년 1월 21일 서울 지역에 눈이 내렸습니다. 그러자 중앙청에서 일하던 정부 직원들이 즉흥적으로 ‘눈사람 만들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장소는 중앙청 동쪽 광장, 그러니까 지금의 경복궁 주차장 자리쯤 되겠습니다. 중앙청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청사로 세워진 건물로,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주요 부처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당시 중앙청 주변은 지금처럼 경복궁의 옛 모습이 복원되기 전이어서, 넓은 공터와 광장이 각종 국가 행사와 집회, 기념식이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됐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나무로 만든 연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다소 엄숙한 정부 행사가 열렸을 그 광장이 이날만큼은 공무원들의 눈 놀이터로 바뀐 것입니다. 매우 즉흥적으로, 잠시 여유를 즐기기 위해 열린 눈사람 만들기 대회였는데, 그것을 자못 진지하게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도 재미있습니다. “공보실, 국무원사무국, 사정위원회, 부흥부, 법제실 및 문교부 등 6개 팀이 참석하여 맹렬한 경쟁”을 했다며 성적 순위까지 보도합니다. 공보실은 정부 정책과 국정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맡았고, 국무원사무국은 국무회의 운영과 정부 부처 간 업무 조정을 담당했습니다. 사정위원회는 공직 기강과 공무원의 비위 문제를 살피던 기관이었고, 부흥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과 사회 기반 시설을 복구하는 경제 부처였습니다. 법제실은 정부가 만드는 법령을 심사했고, 문교부는 오늘날 교육부와 문화 관련 부처의 역할을 함께 맡았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지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절, 전후 복구와 행정 실무에 매달리던 여러 부처의 직원들이 이날만큼은 눈덩이를 굴리며 서로 솜씨를 겨룬 것입니다. “정부 관리들이 눈사람 만들기. 21일 하오 중앙청 동쪽 광장에서는 때마침 내린 눈을 이용하여 중앙청 구내에 있는 정부 각 기관 대항 눈사람 만들기 대회가 거행되었다. 공보실 주최 국무원사무국 후원으로 개최된 동 대회에는 공보실 국무원사무국 사정위원회 부흥부 법제실 및 문교부 등 육 개 팀이 참석하여 맹렬한 경쟁을 하였는데 성적 순위는 다음과 같다. 일위=국무원사무국 이위=사정위원회 삼위=공보실” ‘맹렬한 경쟁’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눈사람을 만드는 작은 놀이였지만, 당시 신문은 정부 부처 대항 경기라도 취재하듯 참가 기관과 주최·후원 기관, 최종 순위까지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전후의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눈 내린 하루 동안 잠시 웃고 즐겼던 모습과, 그것을 엄숙한 문체로 전한 기사의 간극이 지금 읽어도 유쾌합니다. 1위를 차지한 국무원사무국의 작품은 동아일보의 연재 만화 주인공 ‘고바우 영감’을 재현했습니다. 꽤 잘 만든 작품이네요. 김성환 화백의 네 컷 시사 만화 ‘고바우 영감’은 1955년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한 뒤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머리 위로 솟은 한 가닥 머리카락과 둥근 코, 흰 수염이 특징인 고바우 영감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알아볼 만큼 친숙한 대중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정부 공무원들이 눈사람의 소재로 고바우 영감을 택했다는 것은 이 캐릭터가 연재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얼마나 널리 알려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대한뉴스에도 이 대회 장면이 남아 있는데, “고바우 영감을 만든 국무원이 1등을 차지했다”고 소개합니다. 그해에는 눈이 자주 내렸고, 눈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던 듯합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958년 1월 14일 자 조선일보 1면의 ‘일사일언’ 칼럼을 같이 읽어보시죠. 문장이 좋습니다. “강설과 피해 예방의 필요. 13일 서울에서는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후가 되면서 눈으로 변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5시 현재도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데 아직 아스팔트 대로 위에는 눈이 쌓이지 못하지만 지붕 위와 공지에는 하얀 부분이 늘어가고 있다. 이 신문이 독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때쯤 해서는 상당히 많은 눈이 쌓이게 될는지 모른다. 몇 치가 쌓일는지 또는 그 이상이 될지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일부 지방으로부터는 4, 500미리의 강설이 있어 혹은 열차 운전이 불가능하고 혹은 일반 인차(人車)의 통행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오고 있는 때임으로 혹시 재작년 삼월에 있었던 것과 같은 설화나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재작년의 설재(雪災)는 수십 년 사이 처음 있었던 것으로 제일선 지구의 사병들 중에도 해를 입은 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재작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때와 같은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 바이지만 미리부터 주의해야 할 점을 알아두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몇 치’는 당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길이 단위입니다. 한 치는 약 3.03cm이므로 ‘몇 치의 눈’은 수cm에서 10cm 안팎의 적설을 뜻합니다. 기사에 적힌 ‘4, 500미리’는 오늘날 표기로는 400∼500mm, 즉 40∼50cm가량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제설 차량과 제설제, 촘촘한 기상 관측망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정도 눈이 내리면 철도와 도로가 쉽게 끊겼습니다. ‘인차(人車)’는 사람과 차량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이고, ‘설화(雪禍)’와 ‘설재(雪災)’는 큰눈 때문에 발생한 인명·재산 피해를 뜻합니다. 칼럼에서 말하는 ‘재작년 삼월’은 1956년 3월의 폭설입니다. 특히 ‘제일선 지구의 사병들’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대목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던 당시의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이 글은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열차 운행 중단과 교통 두절, 군 장병 피해의 기억을 불러냅니다. 눈은 낭만적인 구경거리인 동시에 생활과 국가 기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재난이었습니다. 기상예보와 제설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신문은 폭설이 오기 전부터 미리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 뒤, 중앙청 광장에서는 정부 직원들이 눈을 뭉쳐 고바우 영감을 만들었습니다. 눈으로 인한 사고를 막고 피해를 복구하느라 고생하던 공무원들이 잠시 여유를 가졌던 ‘눈사람 만들기 대회’였던 듯합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깊게 남아 있던 1958년의 겨울. 눈은 한편으로는 열차를 멈추게 하고 사람들의 발을 묶는 재난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딱딱한 관청의 풍경을 웃음과 장난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눈 덮인 중앙청 광장에서 저마다 눈덩이를 굴리던 공무원들의 모습은, 어려운 시대에도 사람들은 작은 계기를 찾아 웃고 잠시 숨을 돌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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