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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하루도 안 거르고 카드 복기한다... 극한의 두뇌 스포츠 82세 ‘브리지’ 현역

25년째 하루도 안 거르고 카드 복기한다... 극한의 두뇌 스포츠 82세 ‘브리지’ 현역
Source:chosun

25년째 하루도 안 거르고 카드 복기한다 극한의 두뇌 스포츠 82세 브리지 현역 최안희 전 한국브리지협회장 초등학교나 마칠까 걱정 듣던 병약한 소녀, 카드 테이블의 승부사 되다 매일 오전 근력 운동하고 밤마다 두뇌 한계 시험 지며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비로소 삶의 큰 그릇이 됩니다

최안희(82) 전 한국브리지협회장은 카드 테이블 앞에서의 3시간을 “전투”라고 부른다. 총 대신 카드를, 총알 대신 기억력을 쓸 뿐 승부는 그만큼 치열하다는 뜻이다. 20분마다 자리와 파트너가 바뀌며 한 세션 동안 아홉 번의 승부를 치른다. 그 사이 돋보기안경 없이 카드를 본다. 본지 ‘수퍼스트롱’은 80~90대 고령층의 강건함을 조명하는 코너다. 앞선 인터뷰이들이 윙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새벽마다 트랙을 뛰며 몸의 근육을 증명했다면 최 전 회장은 뇌의 근육을 증명한다. 얼마 전 KBS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 과정에서 뇌 MRI와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았다. 지난 5월 15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11일 뒤인 26일 결과를 들었다. 인지 검사에는 그림 100여 개를 보고 이름을 맞히는 문항이 있었다. 올챙이와 달팽이를 바로 맞히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나이 들면 갑자기 질문을 받을 때 단어가 잘 안 떠오르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담당 의사는 “해마 나이가 제일 중요하다”며 실제보다 15년 젊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최 전 회장은 “대뇌와 소뇌를 잇는 신경 부분(뇌 신경섬유)도 손상 없이 깨끗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브리지 협회 대표로 촬영을 갔으니 나이가 젊게 나와야 체면이 서겠다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나와서 다행이었죠.” 2001년 브리지를 시작한 뒤로 “머리가 그대로 있는 셈”이라며 웃었다. 브리지(Bridge)는 체스·바둑과 함께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마인드 스포츠다. 고스톱이나 포커와 달리 운이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정식 대회에서는 모든 테이블에 같은 카드가 배열되며 논리적 추론과 기억력, 파트너와의 소통으로 승부가 갈린다. 최 전 회장이 브리지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1999년 무렵이었다. 대학 동창의 남편이 주한 미국 부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그 동창이 “브리지 하러 간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저는 그게 그냥 빙고 게임 같은 건 줄 알았어요.” 몇 년 뒤 골프 모임에서 만난 후배가 브리지를 권했다. 그는 처음엔 헤어스타일 유행이던 ‘브릿지 염색’을 떠올렸다고 했다. “카드로 하는 거라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갔죠.” 2001년 서울 한남동의 한 교회에서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함께 등록한 20명 중 대부분이 몇 달 만에 그만뒀다. 당시엔 체계적인 교재도, 비딩박스도 없었다. 선생님이 첫날 카드 네 종류와 점수 체계를 대략 알려준 게 전부였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걸 그냥 외웠어요.” 그가 배운 브리지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한국에 처음 브리지를 소개한 이는 한국명 민병갈(본명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이다. 미 해군 정보장교 출신으로 1979년 대한민국 ‘귀화 1호’로 잘 알려진 그는 천리포수목원을 가꾼 인물이자 한국 브리지의 시조다. 밀러 전 장교가 서울 클럽에 브리지 룸을 열고 전파한 문화가 초대 협회장 등을 거쳐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최 전 회장은 혼자 공부하는 방법도 남달랐다. 유튜브 같은 온라인 자료가 없던 시절, 그는 집 식탁에 카드 52장을 펼쳐놓고 자리를 옮겨가며 혼자 네 사람 역할을 다 해봤다. “카드를 요리 놨다 저리 놨다 하면서요. 저 혼자 노는 거 정말 좋아해요.” 한 번에 오래는 못 했다. “한 판 복기하는 데도 30분씩 걸리니까 많이 해봐야 두세 번이었죠.” 최 전 회장은 4남2녀 중 몸이 가장 약한 아이였다. “초등학교나 졸업할까, 고등학교는 갈까” 부모는 늘 걱정했다. 대학(이화여대 교육학과 64학번) 졸업 후 1971년 결혼할 땐 시어머니가 “그 몸으로 아기나 낳겠냐”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저는 몸은 약해도 지적인 욕구는 늘 내재해 있었던 것 같아요. 시골(전남 함평)에서 자랐어도 공부는 웬만큼 했거든요.” 40대 이후 골프에 빠져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필드에 나갔다. 골프를 시작할 때도 그냥 치지 않았다. 미국 프로골퍼 잭 니클라우스가 쓴 골프 교습 만화책 네 권을 구해 이론부터 독파했다. 하지만 50대 중반 무렵 갈증을 느꼈다. “몸만 쓰다 보니 머리 쓰는 일도 해야겠다 싶었죠.” 브리지는 기대 이상으로 어려웠다. “학교 다닐 때 수학·과학보다 어려웠어요. 그런데 쉬웠으면 진작 그만뒀을 거예요. 모르면 답답해요. 뭔지 모르니까 뭔지 더 알고 싶었죠.” 그렇게 호기심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브리지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 브리지는 가만히 앉아 노는 소일거리가 아니다. “몸이 피곤하면 카드가 눈에 안 들어와요. 골프도 컨디션 나쁘면 공이 안 맞듯이요.” 그는 “소설 읽고 음악 듣는 건 몸이 아파도 누워서 할 수 있다. 근데 이건 감기만 걸려도 안 된다”고 했다. “눈빛만 봐도 파트너가 알아채요. ‘언니, 어젯밤 잠 잘 못 잤구나’ 하고.” 파트너십에 대한 책임감도 각별했다. “내가 아파서 못 나오면 내 파트너는 그날 하루를 공치게 돼요. 골프는 대타를 세우지만 이건 둘이 약속된 조합으로 플레이해야 해서 대신할 사람이 없거든요.” 지독한 책임감과 철저한 관리는 고스란히 성적으로 증명된다. 최 전 회장은 지난 5월 열린 한 브리지 대회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손자뻘인 젊은 베테랑 선수들과 계급장 떼고 맞붙어 거둔 값진 결실이다. 그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밤 10시30분에 잠들어 오전 7시까지 깨지 않고 잔다. 눈 뜨면 바로 일어나 콩을 갈고 채소 샐러드에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두르고 남편과 아침을 먹는다. 커피 한 잔 마신 뒤 오전 10시 헬스장으로 향해 30분 걷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근력 운동을 한다. 갈비탕 또는 우거지탕 등 단백질 위주로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클럽으로 향한다. 일요일과 골프 치는 날을 빼면 일주일에 네 번, 오후 2시부터 5시30분까지 경기를 치른다. 저녁은 6시 이후로는 거의 먹지 않는다. 일찍 들어간 날은 생선이나 김치찌개 같은 한식으로 간단히 먹고, 늦게 들어간 날은 찰밥을 해뒀다가 명란젓과 김, 장아찌를 곁들여 소량만 먹는다. 이후엔 자리에 앉아 그날 낮에 쳤던 핸드 기록지를 편다. “내가 다 아는 걸 왜 틀렸을까 하고 봅니다. 속으로는 자괴감이 들고 속도 무척 쓰리죠. 하지만 지난주에 성공해야 했는데 못 만든 아주 어려운 손(패)이 있으면 집에 와서 끝까지 들여다보고 연구해요. ‘이렇게, 이렇게 플레이했으면 만들 수 있었겠구나’ 하고 마침내 터득하는 순간이 있으니.” 그는 “그날의 실수를 그냥 덮어두면 그다음 날 같은 실수를 또 한다”며 “그래서 그날 밤에 어떻게든 연구해 머릿속에서 완전히 해결하고 닫아버려야 다음날 반복을 안 한다”고 했다. 이러한 철저함은 최 전 회장 개인의 일과에만 그치지 않는다. 약속 시각을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후 2시 시작인데 회원들은 보통 20분 전부터 미리 와서 기다린다. “한 사람만 늦어도 전체가 시작을 못 하니까요.” 한 게임은 8분, 4명 중 1명은 순번에 따라 쉬면서 자리와 파트너, 보드가 함께 옮겨간다. “바둑처럼 하루 종일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에요. 왈츠처럼 계속 자리를 바꾸니까 지겨울 틈이 없죠.” 똑 같은 패를 두고 테이블마다 어떻게 풀어냈는지 한눈에 비교되는 시스템이다. “정답이 있는 것 같아도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요. 공격적인 사람, 안정적인 사람 성향이 다 드러나거든요. 그게 너무 재밌어요. 아홉 번의 승부마다 다른 사람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셈이니 지루할 틈이 없지요.” 그는 브리지가 인생과 닮았다고 했다. 같은 조건에서 남탓 할 수 없는 승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파트너와의 관계가 그렇다. “3시간 동안 내 파트너를 무조건 배려해야 해요. 우리는 한 팀이니까 속상하게 하지 않으려 애를 쓰죠. 이겼을 때도 상대 팀이 상처받지 않도록 티를 안 내야 합니다.” 실력이 좋아도 매번 이길 수는 없다. “오늘 1등 했던 사람이 다음 날 꼴등을 하기도 합니다. 골프도 이번 주 우승하고 다음 주 컷오프 당하잖아요. 그런 매일매일의 변주가 이 게임의 매력입니다.” 파트너와 손발이 안 맞아 속이 상할 때도 참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예전엔 초보 시절 다투다가 아예 파트너를 바꾸는 일도 있었어요. 요즘은 다들 훨씬 차분해졌죠.” 그는 이 훈련이 게임 밖에서도 이어진다고 했다. “웬만한 부딪힘은 그냥 넘겨요. 한 사람과 잘 지낼 자신이 있으면 여러 사람과도 지낼 수 있더라고요.” 브리지를 대중의 광장으로 이끈 역사의 중심에 그가 있다. 2013~2014년 최 전 회장이 제10대 한국브리지협회장을 지내며 저변 확대의 기틀을 닦은 지 어느덧 10여년. 만나는 사람마다 브리지를 권했던 그의 뚝심과 뒤를 이은 후배 협회원들의 헌신이 더해져 한국 브리지는 커다란 열매를 맺었다. 협회는 지부를 전국 10곳으로 넓혔고, 200명 남짓이던 회원 수도 최근 4000명 규모로 당당히 성장했다. 최 전 회장은 “아흔 살, 백 살 될 때까지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클럽에 나와 카드를 쥘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훗날 브리지와 협회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클럽 후배들은 그를 지금도 ‘왕언니’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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