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어 좋다"...침묵으로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박현주 아트에세이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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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왜 추상을 합니까?" 유영국은 말했다. "말이 없어 좋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를 읽으려 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무슨 뜻인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림을 말로 바꾸려 한다. 유영국은 말 대신 색을 놓았다. 선을 놓았다. 삼각형 하나를 놓았다. 산이었다. 그러나 그 산에는 나무도, 바위도, 계곡도 없다. 산을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산이 남긴 감각을 그렸다. 추상은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덜어내고, 끝내 남는 것을 붙잡는 일이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붓 대신 그물을 잡았고, 배를 몰았고, 양조장을 운영했다. 시대는 그를 늦게 알아봤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심장에 박동기를 단 뒤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제 그만 쉬라는 말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1994년. 일흔여덟의 화가는 가장 큰 산을 그렸다. 하나는 붉고, 하나는 푸르다. 몸은 약해졌지만 색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유영국은 말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좋은 그림은 설명이 많은 그림이 아니다. 오래 침묵하는 그림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오래 남는다. 유영국의 그림이 그렇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유영국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좋은 그림은 한 사람의 평생이 남긴 침묵이다. 그 침묵은 세월을 건너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만히 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그의 산 앞에 머물게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말이 없어 좋다"...침묵으로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 [박현주 아트에세이 29] 유영국 ‘작품’. 1991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왜 추상을 합니까?" 유영국은 말했다. "말이 없어 좋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를 읽으려 한다. 무엇을 그렸는지, 무슨 뜻인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림을 말로 바꾸려 한다. 유영국은 말 대신 색을 놓았다. 선을 놓았다. 삼각형 하나를 놓았다. 산이었다. 그러나 그 산에는 나무도, 바위도, 계곡도 없다. 산을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산이 남긴 감각을 그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유영국의 최대 규모 개인전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추상은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덜어내고, 끝내 남는 것을 붙잡는 일이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붓 대신 그물을 잡았고, 배를 몰았고, 양조장을 운영했다. 시대는 그를 늦게 알아봤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심장에 박동기를 단 뒤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이제 그만 쉬라는 말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환쟁이가 그림 그리다 죽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1994년. 일흔여덟의 화가는 가장 큰 산을 그렸다. 하나는 붉고, 하나는 푸르다. 몸은 약해졌지만 색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유영국은 말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좋은 그림은 설명이 많은 그림이 아니다. 오래 침묵하는 그림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오래 남는다. 유영국의 그림이 그렇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유영국을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좋은 그림은 한 사람의 평생이 남긴 침묵이다. 그 침묵은 세월을 건너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만히 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그의 산 앞에 머물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작가의 최대 크기 작품인 1994년작 ‘산-Blue’(왼쪽)와 ‘산-Red’가 나란히 걸려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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