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회장도 박 노인도 67년 전 만난 샤일록이 낳았죠”

“나도 저렇게 냉혈한처럼 살고 싶다. 지금 시대는 남이 죽든 말든 나만 잘되면 되는 게 맞는 거야.” 신드롬급 인기를 끈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2012)에서 구수한 사투리로 시선을 강탈했던 ‘자본주의 괴물’ 서 회장의 명장면 클립에 달린 댓글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배우 박근형(86)의 명품연기를 지금 무대에서 직관할 수 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베니스의 상인’의 악덕 사채업자 샤일록도 우리가 알던 악역과는 다르다. - 샤일록,회장,박근형,중앙대 연극영화과,배우,베니스의 상인,신구,연기인생 68년차 배우 박근형,SUNDAY가 만난 사람
연기인생 68년차 배우 박근형 “나도 저렇게 냉혈한처럼 살고 싶다. 지금 시대는 남이 죽든 말든 나만 잘되면 되는 게 맞는 거야.” 신드롬급 인기를 끈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2012)에서 구수한 사투리로 시선을 강탈했던 ‘자본주의 괴물’ 서 회장의 명장면 클립에 달린 댓글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조차 공감하게 만드는 배우 박근형(86)의 명품연기를 지금 무대에서 직관할 수 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베니스의 상인’의 악덕 사채업자 샤일록도 우리가 알던 악역과는 다르다. 평생 차별과 혐오에 시달려온 노인이 자신에게 침을 뱉던 청년에게 모질게 구는 게 납득이 간다. ‘추적자’의 서 회장과 영화 ‘사람과 고기’(2025)의 박 노인을 섞어놓은 듯 ‘미워할 수 없는 샤일록’을 연기하는 박근형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1958년 연극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로 데뷔해 연기 인생 68년 차에 접어든 그는 지금 누구보다 뜨겁다. 알고보니 샤일록과 보통 인연이 아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1959년 처음 샤일록을 맡았을 땐 배우를 포기한 상태였다. “대학 들어가기 전 충무로에 있는 배우전문학원에서 1년간 애를 썼는데 배우 되기가 너무 험난하더군요. 대학에 가자마자 연출부로 바꾸고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조연출을 맡았죠. 그런데 샤일록 역 배우가 공연을 열흘 남기고 하차한 거예요. 할 수 없이 ‘땜빵’으로 나섰는데, 그걸 본 극작가 이근삼 교수가 나에 대해 신문에 대서특필을 하시는 바람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됐죠.” - “젊을 때는 사람의 깊이에 대해 몰랐죠. 동성애나 종교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고 권선징악 코미디로만 알았는데, 나이들어 들여다보니 달라 보여요. 살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인물을 구축했죠.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 유대인의 비극을 대변하길 원했지만 난 싫다고 했어요. 종교나 민족을 대변하는 게 배우의 일은 아니거든요. 나는 오직 사람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어요. 억압된 삶을 뚫고 나가려다 자기 덫에 걸린 한 개인의 내면에 집중할 뿐이죠.”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베니스의 상인’ 공연 - “누구나 자기 이득을 원하고 손해 보길 싫어하잖아요. 나는 그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릴 뿐인데, 보는 분들이 여러 갈래로 생각하고 평해주는 바로 그 재미 때문에 평생 배우를 붙들고 있어요. 특히나 연극은 여러 사람과 협의해 나온 정신세계를 실제 전달하는 게 오롯이 배우 책임인 배우의 예술이잖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죠.” 전북 정읍의 큰 여관집에서 태어난 그는 애초에 배우가 될 운명이었다. 여관은 늘 악극단, 영화 관계자들로 북적였고, 어머니 손잡고 가서 본 공연 흉내로 어른들 박수를 받곤 했다. 휘문고 연극반에서 임영웅 연출까지 만났으니, 완벽하게 짜여진 극본이었던 셈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온갖 흑백영화를 다 봤고, 고등학교 땐 말론 브란도에게 푹 빠져서 하숙집 근처 극장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영화 ‘워터프론트’를 6번 다 보고 나올 정도였죠. 내 몸으로 다른 사람 인생을 살아보는 게 그렇게 좋더군요.” - “영상 쪽은 배우보다 감독의 예술이라 그런지 인상에 남는 게 많지 않아요. ‘사람과 고기’도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감독과 합의를 하고 찍었는데, 요새 넷플릭스에서 인기라니 기분 좋네요. 젊을 때 사극 ‘세종대왕’에서 내가 양녕을 햄릿처럼 연극 메소드를 그대로 빌려다가 했는데, 그게 인기를 끌어서 한글 창제보다 양녕 이야기가 많아졌죠.(웃음) 연극하던 습관 때문에 단막극을 많이 했는데, TV문학관 초창기 이상의 ‘날개’나 김승옥의 ‘무진기행’ 같은 굉장한 소설들이 기억나네요.” - “50대가 되니까 갈 데가 없더군요. 연인도 아버지도 안 돼서 제일 어려운 시기였는데, 어느 날 협회보에 실린 ‘역할 창조’라는 논문을 보고 이게 내 살길이다 싶었어요.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에서 옛날식으로 말해 성격배우 스타일로 확 바꿨죠. 그게 터닝포인트가 돼서 회장님도 하게 됐고. ‘추적자’ 때는 필리핀 대통령 뉴스를 보고 거기 고전의상 같은 걸 사달라고 해서 입었는데, 그게 아주 잘 어울려서 캐릭터가 살았죠.” - “연기는 ‘액팅’이잖아요. 모든 연기는 동작이고, 대사도 몸으로 부딪치면서 붙여야 하죠. 한 달 가까이 상대와 교감하면서 호흡을 맞추다 보면 눈빛, 걸음걸이만 봐도 대사가 나와요. 요즘 사람들은 대사부터 외우고 거기에 동작을 맞추던데, 난 처음부터 그렇게 배웠죠. 연극은 누구 한 사람이 유창한 대사나 현란한 동작을 화려하게 보이는 게 아니에요. 절제 속에서 상호교류하면서 목표를 향해 조화를 이루는 게 연극이죠.” 1960년대 국립극단 간판으로 활약했지만 오랜 세월 ‘탤런트’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그가 연극판에 본격 컴백한 건 3년 전이다. 신구 선생과 함께 출연한 파크컴퍼니의 ‘고도를 기다리며’(2023)가 전회차 전석매진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니스의 상인’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돌아오니 부딪침도 있었어요. 내가 배운 건 배우가 처음부터 목표를 세우고 정점을 거쳐 마지막 카타르시스까지 끌고 가야하는 건데, 요즘엔 배우를 재료로 쓰는 것 같더군요. 그걸 용납할 수 없어서 내 고집을 관철시켰죠. 내가 나이가 많으니 좀 들어주는 방향으로 나오길래 그대로 밀어붙였고, 그래서 지금도 정통극의 방법론을 고집하고 있어요. 배우가 정신세계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끝난다면 예술이 아니지 않나요.” - “이해랑 선생 생전에 ‘리어왕’을 할 때도 선생과 부딪치며 ‘꼴통’ 소리를 들었죠. 난 국립극단에서 이진순 선생에게 내 생각을 넣으라고 배웠거든요. 이번에도 모든 캐릭터에 훈수를 두니 연출이 힘들어하더군요.(웃음) 요즘 연극은 10명이 나와도 한 사람밖에 안 보이는 게 안타까워서 그래요. 우리 작품은 20명이 다 보이지 않나요. 연극은 그래야 한다는 거죠.” 오랜만에 돌아온 연극판이 여전히 가난한 데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베니스의 상인’ 대극장 입성이 ‘상업극 시대’로 가는 길목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요즘 뮤지컬 시장이 엄청나잖아요. 그 여파로 젊은 관객이 연극으로도 많이 유입되고 있으니, 이제 연극도 믿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져야죠. 책임 있는 회사와 자본이 결합한 ‘상업 대작’의 영역으로 가야 돼요. K컬처의 뿌리가 연극이잖아요. 무당굿, 도깨비 같은 우리만의 콘텐트를 상업극으로 만들어서 세계를 누비고 다녀야죠.” 기부 공연 등 연극 후배들 위해 솔선수범 - “국립극단이 역할을 해줘야 해요. 나만 해도 60년대 국립극단에서 공모한 창작희곡으로 천승세의 ‘만선’, 이원경의 ‘수선화’ 등 대작을 다섯 개나 했거든요. 요즘엔 일반 극단도 할 수 있는 작은 소품을 국립이 하고 있어요. 적어도 국립이라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품을 만들어서 해오름같은 대극장에 올리고 해외에 나가고, 단원도 본공연 하는 사람과 투어하는 사람으로 나눠서 전국민한테 문화 혜택을 줘야죠.” 쓴소리만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연극계 후배들을 위한 솔선수범에도 열심이다. 지난 11일 공연은 기부공연으로 진행됐는데, 지난해 신구와 함께 조성한 ‘연극내일기금’에 티켓수익을 기부한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올해 론칭한 ‘연극내일 프로젝트’가 청년 배우 30명을 선발해 수개월 훈련을 거쳐 창작극 공연까지 지원하는데, 신구와 박근형은 마스터클래스로 힘을 보탠다. “‘고도를 기다리며’ 139회를 끝내놓고 신구 형님, 박정미 프로듀서와 얘기하다가 배우들을 위해 일을 꾸며보기로 했죠. 요즘 대학로 배우들이 생활고 때문에 공부를 못 하잖아요.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대학 4년 동안 무대 한두 번 서보고 끝나는데, 실기만 가르치는 배우학교가 필요하거든요. 앞으로 배우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도록 좀 더 개입할 겁니다.” - “연기의 기본은 관찰과 상상이거든요. 간접경험을 많이 하려면 활자를 통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요. 명작부터 잡글까지 다 읽어야 하는데, 가장 추천하는 건 종이 신문이죠. 그 안에 모든 게 있으니까. 시야를 넓혀야 자기 생각도 담을 수 있죠. 연극내일 프로젝트로 그런 준비를 시키려는 거예요.” ‘베니스의 상인’에 공작 역으로 출연 중인 신구와 그는 몇 년 새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어른이 사라진 연극계에 보물 같은 존재들이다. 얼마 전 대학로에서 신구 선생의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연초에 그가 출연한 연극 ‘더 드레서’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무대를 버텨낸 노배우가 겹쳐 보여 뭉클했다. “형님이나 나나 배우 외길 인생인데,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가요. 이제 선배라고는 형님 한 분 남았으니 가시는 날까지 즐겁게 같이 연극하고 싶고, 쳐다보면 안쓰러워서 손을 잡게 돼요. 나중에 내 후배는 내가 안쓰러워 손을 잡아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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