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간 딤섬, 비둘기 고기, 허파 수프... 93년째 지키는 ‘홍콩’의 맛과 격식

돼지 간 딤섬, 비둘기 고기, 허파 수프 93년째 지키는 홍콩의 맛과 격식 홍콩 100년 식당 8 룩유 티하우스 평당 4억 금싸라기 땅, 1층은 단골 전용층 목재 건물부터 조리법까지 전통 고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많은 식당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홍콩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포(老鋪)들이 있습니다. 그런 노포들을 조선일보 주말 섹션 ‘아무튼, 주말’에 소개했습니다(‘ 세월을 버텨낸 노포들이 들려주는 진짜 홍콩의 맛 ’). 지면 제약으로 노포들 사연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조선 멤버십’에서 한 곳씩 제대로 소개하려 합니다. ‘홍콩 100년 식당’ 여덟 번째는 가장 고전적인 딤섬을 맛볼 수 있는 ‘룩유 티하우스’입니다. 홍콩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땅값이 비싼 도시다. 평균 땅값은 평당 약 2억원, 도시 중심부인 센트럴은 4억원을 호가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도시는 모나코이고, 이어 홍콩·뉴욕·런던·싱가포르·서울 순이다. ‘룩유 티하우스(Luk Yu Tea House·陸羽茶室)’는 홍콩 센트럴에서 93년째 영업 중인 딤섬 식당이다. 그런데 이 식당은 이 금싸라기 땅에 있는 건물 1층(Ground Floor)을 항상 비워 놓는다. 식당 밖 대기 줄이 아무리 길어도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이다. 수십 년째 찾아주는 단골들이 언제 오건 기다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홍콩 센트럴 초현대식 빌딩 숲 사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초록색 차양의 3층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육중한 목재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면 1930년대 홍콩으로 돌아간다. 1933년 문을 연 룩유 티하우스다. 광저우나 상하이에서 옮겨온 식당이 아닌, 홍콩에서 개업한 식당으로는 가장 오래됐다. 가장 ‘순수한’ 홍콩식 찻집으로도 통한다. ‘육우다실’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이자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다경(茶經)’을 저술하며 다도(茶道)를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차(茶)의 성인’ 육우(陸羽)에서 따왔다. 이곳의 매력은 고집스러운 전통 고수에 있다. 고풍스러운 목재 패널로 분리된 부스석과 고가구가 배치돼 있다. 벽에 걸린 서예 작품과 그림은 문화의 향기를 공간에 더한다. 짙은 갈색 목재 패널로 나뉜 부스석, 천장에서 유유히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과거의 흔적으로 남겨둔 타구(spittoon)... 나이 지긋한 고객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지나간 시절을 체험할 수 있는 힙한 명소가 되고 있다. 매일 아침 이곳 1층은 수십 년째 같은 시간에 출근 도장을 찍는 노신사들로 가득 찬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익숙한 듯 차를 마시고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반 관광객이나 새로운 손님은 2층과 3층으로 안내받는다. 누군가는 차별이라 느낄지 모르지만, 홍콩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이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이자 룩유만의 낭만으로 여겨진다. 백발 성성한 웨이터들은 룩유의 또 다른 명물이다. 흰 가운을 입은 노년의 웨이터들은 살갑지 않다. 매스컴에서는 이들을 종종 ‘무뚝뚝하다’거나 ‘불친절하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그들만의 엄격한 전통과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뜨거운 차를 내오고 주문을 받는 모습은 이곳 정체성의 일부다. 세련된 대기업식 서비스 교육을 받은 젊은 직원은 없지만, 수십 년의 경력이 빚어낸 그들의 ‘전문성’은 육우다실의 독특한 맛을 더한다. 메뉴판을 펼치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퓨전 요리는 없다. 손이 많이 가고 이윤이 남지 않아 다른 곳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고전적인 조리 방식을 고수한다. 신선한 돼지 간을 올린 시우마이(豬潤燒賣)가 대표적이다. 돼지 간을 두툼하게 썰어 올린 이 딤섬은 재료의 선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잡내가 나기에 웬만한 식당에선 엄두 내지 못하는 전통 메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폭신한 빵 안에 담백하게 조리한 닭고기를 넣은 ‘스팀 치킨 번(Steamed Chicken Buns)’도 언제나 인기다. ‘자강고로육(子薑咕嚕肉)’은 정통 광둥 요리(Classic Cantonese Dishes)의 대표 요리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새콤달콤한 탕수육이지만, 어린 생강(자강)을 함께 볶아 낸다. 부드럽게 씹히는 튀긴 돼지고기와 소스 끝에서 느껴지는 알싸하고 청량한 생강 풍미가 요리의 격을 높인다. 비둘기 고기와 중국 햄 화퇴(火腿)의 조화가 일품인 ‘운퇴앵추구(雲腿鵪鶉球)’도 이제는 맛보기 힘들어진 고전 광둥 요리다. 다진 능성어(Grouper)를 식빵에 도톰하게 올려 바삭하게 튀겨낸 ‘석반다사(石斑多士)’는 겉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속은 생선 살의 촉촉한 부드러움이 살아있다. ‘행인저폐탕(Chinese Almond and Pork Lung Soup)’은 룩유가 추구하는 느림의 미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돼지 허파를 부서지지 않게 깨끗이 손질해 고소한 아몬드즙에 장시간 고아낸 보양 수프로, 뽀얗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닭을 넓적하게 펼쳐 양념을 발라 살짝 말렸다가 망에 올려 웍에 얹어 기름을 여러 시간 부어가며 조리하는 광둥식 치킨(Roasted Crispy Chicken)은 껍질에서 기름이 쏙 빠져 극상의 바삭함과 고소함이 기가 막힌 닭요리다. 홍콩 젊은 세대와 외국 관광객 사이에서 다시 룩유가 인기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올릴 화려하고 자극적인 비주얼 때문이 아니다. 부모 혹은 조부모가 젊은 시절 다니던 공간에서 같은 맛을 공유한다는 연결감과 향수 때문이다. 홍콩에 수많은 미쉐린 스타 식당과 세련된 카페가 즐비하지만, 룩유의 독보적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오늘도 룩유에서는 93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차를 끓이고 딤섬을 빚는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21세기, 변함 없는 장소에서 변함 맛과 서비스를 경험한다는 것은 예상외로 큰 위안과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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