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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규의 ESG 모델링50] 항공여정의 숨은 가치下 에어헬프가 만든 승객 보상 청구 시장 (연재마침)

[심준규의 ESG 모델링50] 항공여정의 숨은 가치下 에어헬프가 만든 승객 보상 청구 시장 (연재마침)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몇 번 다니다 보면 지연이나 결항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게이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다음 날 비행기를 타는 경우도 있고, 환승을 놓쳐 일정이 통째로 꼬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내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규정이 있다. 항공사 귀책으로 지연이 발생했을 때, 지연 시간에 따라 운임의 일정 비율을 배상하도록 정한 기준이다. 국제선 기준으로 지연이 4시간을 넘으면 운임의 20%, 12시간을 넘으면 30%까지 배상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항공사 귀책이라는 조건이 하나 붙는데, 그 경계가 승객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기상 악화나 천재지변처럼 항공사가 통제할 수 없는 사유라면 배상 의무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연이 정비 문제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승객이 스스로 구분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그 판단은 사실상 항공사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배상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지연확인서를 발급받고, 귀책 사유를 확인하고, 신청 서류를 갖춰 항공사나 한국소비자원에 접수하는 과정을 승객이 직접 해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받을 수 있는 돈을 그냥 포기하는 승객이 훨씬 많다. 여기서 짚어야 할 지점은 지연 원인과 절차에 대한 정보를 항공사가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승객은 자신이 겪은 지연이 배상 대상인지조차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 그 판단 근거는 전적으로 항공사가 제공하는 설명에 달려 있다. 개인이 해당 정보를 검증할 방법이 없는 구조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소비자와 기업 사이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있다는 뜻이다. 이 균형을 바로잡는 문제는 기업 지배구조와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논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반면 유럽에서는 이 문제를 훨씬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다룬다. ‘EU261’은 유럽연합이 2004년 제정한 항공 승객 권리 규정이다. 항공사 귀책으로 지연·결항이 발생했을 때 배상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유럽에서 출발하거나 유럽 항공사가 운항하는 노선이 적용 대상이며, 비행 거리에 따라 최대 600유로(약 90만 원)까지 정액으로 배상 받을 수 있다. 같은 항공사, 같은 승객이라도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노선과 인천에서 방콕으로 가는 노선은 적용 받는 규정 자체가 다르다. 어느 규정이 적용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돈이 0원에서 90만 원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 복잡성을 승객 개개인이 파악해서 청구까지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2013년 설립된 에어헬프(AirHelp)는 이 복잡성을 대신 처리해주는 회사로 시장을 개척했다. 승객이 항공편 정보만 입력하면 어떤 규정이 적용되는지, 배상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자동으로 판별해주고, 자격이 확인되면 서류 준비부터 항공사와의 협상, 필요할 경우 소송까지 전 과정을 대신 진행한다. 수수료는 보상금을 받아냈을 때만 그 일정 비율로 청구되는 성공 보수 방식이라, 절차의 복잡함 때문에 청구를 포기했을 승객도 부담 없이 신청하게 된다 . 지금까지 이 회사가 도움을 준 승객은 300만여 명에 이른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 걸쳐 400명 안팎의 직원이 일하는데, 청구 처리 인력만이 아니라 기술 개발, 법무, 고객 지원 인력을 모두 합친 숫자다. 개별 승객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법률·행정 지식을 회사 단위로 축적하고 표준화하면서, 정보 격차 자체를 하나의 사업 기회로 바꿔놓은 셈이다. 항공사 입장에서 청구 대행 회사의 존재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예전 같으면 승객이 절차의 복잡함 때문에 포기했을 청구가, 이제는 대행사를 통해 꾸준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연을 줄이고 원인을 투명하게 안내할수록 항공사가 지불해야 할 보상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부분에서 소비자 권리 보호가 항공사에게도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이유가 드러난다. 정보를 숨길수록 당장의 배상 비용은 줄겠지만, 청구 대행 회사가 그 정보 격차를 대신 메워주는 시장이 커질수록 결국 항공사가 감당할 비용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온다. 차라리 처음부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원인 관리에 투자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배상 비용과 평판 손실을 동시에 줄이는 길이다. 국내 시장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미 들어와 있다. 에어헬프는 국내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통해 항공편 보상 지원 서비스로 판매되고 있고, 비슷한 개념을 표방하는 국내 스타트업도 조금씩 등장하는 중이다. 다만 아직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이용 후기나 처리 실적이 충분히 공개돼 있지 않아서, 얼마나 자리를 잡았는지는 지켜볼 부분으로 남아 있다. 이런 청구 대행 서비스들의 공통점은 항공사 밖에 있는 제3자라는 점이다. 항공사 앱이나 예약 화면에서 자동으로 안내 받는 구조가 아니라, 승객이 따로 검색해서 찾아 들어가야 존재를 알 수 있다. 정작 지연을 겪은 당사자가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항공사가 청구 절차를 직접 흡수하는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항공권이 여행사나 온라인 플랫폼을 거쳐 팔렸더라도, 운임 정보 자체는 항공사의 예약 시스템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배상 대상과 금액을 계산하는 일 자체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다만 제3자를 통해 예약한 승객의 연락처를 항공사가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자동 안내까지 이어지려면 여행사·플랫폼과의 데이터 연동이 별도로 필요하다. 데이터 연동만 갖춰지면 지연이 발생했을 때 승객이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자격 여부를 자동으로 확인하고, 앱 알림 하나로 배상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제3자 대행사에 수수료를 떼일 일이 줄어드는 만큼, 승객이 항공사에 갖는 신뢰도 함께 쌓인다. 지금 당장 모든 판매 채널을 통합하기는 어렵더라도, 직접 판매 비중이 높은 노선부터 시범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상편에서 다룬 ‘플러스그레이드’가 좌석이라는 물리적 자원의 효율을 높여 환경적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에어헬프는 정보라는 비물리적 자원의 격차를 좁혀 소비자 권리와 기업 신뢰라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두 회사 모두 항공사가 이미 가진 것(빈 좌석이든 지연 데이터든)을 다른 방식으로 다뤘을 뿐,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자원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것을 감추거나 방치하는 대신 투명하게 순환시켰을 때 수익과 신뢰가 함께 따라온다는 원리는 같다. 국내 항공 산업이 참고할 지점은 두 회사 모두 새로운 규제나 캠페인 없이, 이미 존재하는 규정과 데이터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좌석이든 보상금이든, 이미 승객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가치가 절차의 복잡함 때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그 절차를 정리하고 자동화하는 일이, 앞으로 항공 산업에서 환경적 효율성과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쌓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연재 마칩니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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