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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개혁과 닮은 일본의 자살 예방 정책

축구 개혁과 닮은 일본의 자살 예방 정책
Source:hani

2026년 월드컵이 스페인의 우승으로 장장 39일의 대장정을 마쳤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란히 16강에 올랐던 한국과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완전히 다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한국은 비교적 무난한 조에 편성됐지만 체코전 승리 이후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달아 패하며 조 3위에 그쳤다. 결국 온 국민을 애태운 수많은 경우의 수 계산 끝에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일본은 네덜란드, 스웨덴, 튀니지라는 강호들 사이에서 조 2위를 차지하며 무난히 조별 예선을 통과했고, 32강에서는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1 대 2로 끝까지 맞섰다. 경기 결과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축구가 세계 최강국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회 전 다소 허황하게 들렸던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일본 대표팀의 목표는 우승”이라는 선언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일전의 승패에 민감한 우리에게 두 나라의 엇갈린 성적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일본의 자살 예방 정책을 오랫동안 지켜본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이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일본 축구가 걸어온 길이 일본의 자살 예방 정책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축구는 분명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일본은 뒤늦은 제이(J)리그 출범 이후 생활체육을 바탕으로 한 유소년 육성 체계를 전국적으로 정착시켰고,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세웠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 계획을 수십년에 걸쳐 하나씩 실행해 왔다. 지도자 양성, 유소년 시스템, 지역 클럽 육성, 선수 발굴까지 장기적인 그림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일본의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90년대 일본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았고, 한때 우리보다 두배 이상 높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한 뒤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라는 목표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물론 어느 나라든 자살률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월드컵 우승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체계적으로 집중한 결과는 분명했다. 지난해 일본의 자살률은 50여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이제는 우리보다 약 40% 낮은 수준이 되었다. 무엇이 달랐을까. 무엇보다 일본의 변화는 자살 유가족들의 목소리에서 직접 시작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는 같은 비극이 없도록 국가가 막아달라’는 유가족들의 절박한 호소는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이어졌고, 국민들의 인식은 물론, 국가 정책까지 바꾸었다.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나약함이나 가족이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국가 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 그와 같은 토대 위에 일본은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중장년층을 적극 지원했고, 사회적 고립 문제를 국가 의제로 다루기 위해 ‘고독·고립 담당 장관’까지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를 확대했고, 자살 예방 전화와 소셜미디어(SNS) 상담, 정신과 응급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언론 보도 원칙을 정비하며 모방 자살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지방정부들도 각자 지역 특성에 맞게 자체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무엇보다 이런 정책은 과감한 예산 책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은 해마다 한국 자살 예방의 15~20배 수준의 과감한 투자를 해오고 있다. 축구에서 일본에 뒤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축구가 중요해도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정말 분해야 할 것은 축구 한일전의 패배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노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두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월드컵 실패 이후 한국 축구를 혁신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케이(K)-축구 혁신위원회가 꾸려졌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박지성 선수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대통령 직속의 국민생명안전위원회가 신설됐다. 부위원장으로 자살 예방 전문가인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임명한 것은 정부의 자살률 감소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두 위원회의 출범은 모두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관건은 각 위원회에서의 논의 사안들이 실제 정책과 예산, 제도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축구 혁신위원회의 활동이 대한축구협회를 바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이, 자살 예방도 마찬가지다. 부디 국민생명안전위원회가 한국 자살률 감소의 초석을 다질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정부는 올해 자살자 수 1천명을 줄이는 ‘천명지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2030년까지 5년 이내에 연간 자살자 수를 1만명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자살예방 국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사실 이와 같은 목표치는 매 정부 임기 초에 과감하게 제시됐으나, 한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이는 국민적 관심과 안정적인 정책, 그리고 충분한 예산이 함께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통계에서는 희망적인 신호가 보인다. 잠정치이긴 하나, 올해 1~4월 자살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1명(12.9%)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책의 연속성과 재정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국민의 시선은 벌써 2030년 월드컵으로 향하고 있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앞으로 4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 우수한 감독을 선임하고, 공정하게 선수를 발탁하고, 유소년 시스템을 손보고, 협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2030년의 자살률에도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가. 예전에 대만의 한 자살 예방 전문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살자 수가 발표되는 날이면 국민들이 함께 결과를 기다리며, 숫자가 줄어들면 모두가 기뻐했다고 한다. 마치 축구 대표팀이 승리했을 때처럼 말이다. 부디 우리도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축구와 자살 예방은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영역 모두 결국 한가지를 말해준다. 국가가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느냐, 또 얼마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느냐가 결국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 부디 2030년에는 한국 축구도, 한국의 자살률도 온 국민이 만족할 만한 변화가 있길 바라본다. 나종호 | 미국 정신과 전문의이자 중독 정신과 전문의. 아픔을 고백하면 약점 잡기보다는 함께 공감해주고, 그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저서로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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