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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기잖아요" ... 혐오에 빠진 아이들,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그냥 웃기잖아요" ... 혐오에 빠진 아이들,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선생님, 그냥 재미있는 밈(meme, 온라인 유행 콘텐츠)인데요." 얼마 전 학생들에게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했다. 발표 자료를 살펴보던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특정 혐오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조롱 문구가 발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요즘 많이 쓰는 밈이에요." "그냥 웃기잖아요."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 묻지 않았다. 학생들은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며, 정치인을 조롱하는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혐오가 아니라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쉬는 시간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친구에게 붙여 놀리고,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정치 풍자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한다.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언어를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혐오가 자연스러운 놀이 문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학생들을 먼저 탓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들이 혐오를 웃으며 소비하는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교실에 들어온 혐오, 시작은 스마트폰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10대 극우화를 특정 커뮤니티나 일부 학생들의 일탈로 설명하려 한다. 물론 온라인 극단주의의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조금 다르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혐오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혐오는 온라인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또래 문화 속에서 재미있는 콘텐츠로 소비되며, 비판 없이 교실로 들어온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책 <불안 세대>에서 오늘날 청소년을 "오프라인에서는 과보호되고 온라인에서는 방치된 세대"라고 진단했다. 이 표현은 지금 학교 현실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설명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작은 위험도 철저히 통제받지만, 스마트폰 안에서는 혐오와 음모론, 극단적 정치 콘텐츠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소비한다. 과거에는 학교와 친구 관계가 온라인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온라인 문화가 오히려 학교 문화를 지배한다. 숏폼에서 유행한 혐오 표현은 다음 날 교실의 유행어가 되고,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는 또래 집단의 웃음 소재가 된다. 혐오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파고든다 그러나 알고리즘만으로는 이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 어떤 학생은 혐오 콘텐츠를 흘려보내지만, 어떤 학생은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처럼 받아들이는가. 전체 내용보기

"선생님, 그냥 재미있는 밈(meme, 온라인 유행 콘텐츠)인데요." 얼마 전 학생들에게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했다. 발표 자료를 살펴보던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특정 혐오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와 조롱 문구가 발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요즘 많이 쓰는 밈이에요." "그냥 웃기잖아요."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그것이 왜 문제인지 묻지 않았다. 학생들은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며, 정치인을 조롱하는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혐오가 아니라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쉬는 시간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친구에게 붙여 놀리고,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정치 풍자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한다.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언어를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혐오가 자연스러운 놀이 문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학생들을 먼저 탓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들이 혐오를 웃으며 소비하는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교실에 들어온 혐오, 시작은 스마트폰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10대 극우화를 특정 커뮤니티나 일부 학생들의 일탈로 설명하려 한다. 물론 온라인 극단주의의 영향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조금 다르다. 학생들은 처음부터 혐오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혐오는 온라인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또래 문화 속에서 재미있는 콘텐츠로 소비되며, 비판 없이 교실로 들어온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책 <불안 세대>에서 오늘날 청소년을 "오프라인에서는 과보호되고 온라인에서는 방치된 세대"라고 진단했다. 이 표현은 지금 학교 현실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설명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작은 위험도 철저히 통제받지만, 스마트폰 안에서는 혐오와 음모론, 극단적 정치 콘텐츠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소비한다. 과거에는 학교와 친구 관계가 온라인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온라인 문화가 오히려 학교 문화를 지배한다. 숏폼에서 유행한 혐오 표현은 다음 날 교실의 유행어가 되고,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는 또래 집단의 웃음 소재가 된다. 혐오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파고든다 그러나 알고리즘만으로는 이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 어떤 학생은 혐오 콘텐츠를 흘려보내지만, 어떤 학생은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처럼 받아들이는가.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보면 그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많은 학생들은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지 못한다. 성적과 등급, 수행평가와 입시 경쟁은 학생들에게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당수 학생에게는 반복되는 좌절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친구 관계의 단절, 스마트폰 중심의 생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치면서 자신이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잃어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읽기·과학 모두 세계 최상위권의 학업 성취를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의 비율은 22%로 OECD 평균(18%)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한 질병관리청의 2024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는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42.3%, 우울감 경험률이 27.7%로 나타났다. 높은 성취와 낮은 행복이 공존하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건강한 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때로는 누군가를 조롱하고 특정 집단을 비하하며 또래의 웃음을 얻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혐오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왜곡된 소속감과 잘못된 인정 욕구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10대 극우화를 정치 현상이기 이전에 정서와 관계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쳤지만 공동체는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다 학교에도 민주시민교육은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삶 속에서는 충분히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가치다. 그러나 입시 중심 교육과 촘촘한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토론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보다 경쟁하고 평가받는 경험을 훨씬 많이 한다. 여기에 교사들이 정치적 논란과 민원을 우려해 혐오 표현이나 왜곡된 정보에 대해 깊이 토론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정치적 중립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중립은 혐오를 방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실과 허위를 구분하고, 차별과 혐오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교육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벌하기 전에 교육을 돌아봐야 한다 10대 극우화의 해법은 학생 몇 명을 처벌하거나 특정 사이트를 폐쇄하는 데 있지 않다. 혐오 콘텐츠는 플랫폼을 옮겨 다닐 뿐이고, 상처받은 마음은 다른 형태의 극단성을 찾아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학교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건강한 소속감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학생자치와 토론, 프로젝트 수업, 예술 활동과 봉사활동은 단순한 비교과 프로그램이 아니다. 학생이 "나는 이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배우는 교육이다. 동시에 디지털 시민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혐오 표현을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어떻게 분노와 편견을 증폭시키는지, 밈이 어떻게 차별을 감추는지, 온라인의 언어가 현실의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를 함께 배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보내는 가장 아픈 구조 신호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혐오를 알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혐오를 놀이처럼 배웠고, 경쟁 속에서 상처받았으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10대 극우화를 일부 학생의 일탈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자존감과 관계, 소속감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신호이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혐오하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아이들이 왜 혐오를 통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졌는지를. 그 질문을 외면한다면 혐오는 다른 이름과 다른 플랫폼으로 계속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하기 시작한다면, 교육은 다시 아이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별의별 교육연구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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