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존재가 건네는 위로...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오랑우탄인지 인간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아이를 안고 있다. 정체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친밀한 감정만큼은 전해진다. 서로 다른 존재가 곁을 내어주는 모습은 무엇이 관계를 구성하는지 되묻게 한다.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61)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11월 1일까지 열린다. 2002년부터 2025년까지 2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주요 조각 작품을 비롯해 사진, 영상, 설치, 아카이브 자료 등 총 56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킨쉽(Kinship)’은 일반적으로 친족, 혈연, 가족 관계를 뜻하지만, 피치니니의 작업에서는 인간 중심의 관계를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맺는 연결과 책임의 의미로 확장된다. 전시는 작가가 창조한 상상의 생명체들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 가족과 타자의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1부 ‘깨어나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낯선 존재들
수원시립미술관서 국내 최초 개인전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관계 탐구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오랑우탄인지 인간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아이를 안고 있다. 정체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친밀한 감정만큼은 전해진다. 서로 다른 존재가 곁을 내어주는 모습은 무엇이 관계를 구성하는지 되묻게 한다.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패트리샤 피치니니(61)의 국내 최초 개인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11월 1일까지 열린다. 2002년부터 2025년까지 2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주요 조각 작품을 비롯해 사진, 영상, 설치, 아카이브 자료 등 총 56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킨쉽(Kinship)’은 일반적으로 친족, 혈연, 가족 관계를 뜻하지만, 피치니니의 작업에서는 인간 중심의 관계를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맺는 연결과 책임의 의미로 확장된다. 전시는 작가가 창조한 상상의 생명체들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 가족과 타자의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1부 ‘깨어나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낯선 존재들과 처음 마주하는 자리다. 익숙한 생명의 모습을 벗어난 형상들은 사물과 몸, 인공과 자연 사이를 오가며 작가가 상상하는 ‘인공적 자연’을 보여준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바쳐진 존재’(2009)는 아기처럼 보이는 낮게 웅크린 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존재는 연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이는 동시에, 이후 등장할 상상의 생명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연다. ‘독수리 알 인간’(2018)은 돌봄이 누구의 역할로 규정되어 왔는지를 다시 묻는다. 캥거루 주머니를 연상시키는 신체 구조 안에 알을 품은 형상은 보살핌이 여성성이나 모성에 한정되지 않고, 생명을 책임지려는 모든 이에게 열릴 수 있음을 드러낸다. 2부 ‘조우하다’는 낯선 생명과 인간이 서로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을 다룬다. 상상 속 생명체들이 인간의 일상 공간 안에 함께 있는 듯한 장면을 통해, 서로 다른 존재가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상황과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의심하는 토마스’(2008)의 아이는 낯선 생명체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고, 때로는 몸을 기울이며 상대에게 다가가려 한다. 낯선 존재와 만나는 순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보여준다. 사진 연작 ‘피츠로이 시리즈’(2011)에서 낯선 존재는 인간의 일상 가까이 들어오며 서로 다른 삶이 겹쳐지는 자리를 만든다. 도서관, 골목, 침실, 거리 등 일상적인 공간에 도시 환경에 적응하도록 상상된 생명체인 ‘바텀피더(Bottom Feeder)’가 등장하며, 상상의 생명체가 실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3부 ‘유대하다’는 낯선 생명과 인간이 서로의 곁에 머물며 관계를 이어가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인간과 오랑우탄의 특징이 결합된 ‘킨드레드’(2018)는 인간 안의 동물성과 비인간 존재에게서 발견되는 친밀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유대’(2016)는 어머니와 아이로 보이는 두 존재가 가까이 기대어 있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인간과 닮은 아이의 신체에 러닝화 밑창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결합돼 사물의 형태가 생명체의 신체 일부로 전이되는 작가의 조형적 특징을 나타낸다. 생명공학으로 탄생한 듯한 어미와 새끼의 모습을 한 ‘신생가족’(2002)은 새로운 생명을 둘러싼 윤리적 고민을 불러일으키며, 우리가 무엇을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존재를 책임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4부 ‘흔적들’은 작가의 작업 과정과 주요 프로젝트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다. 작가의 인터뷰 영상, 작업 자료, 기록 영상을 통해 작가가 어떤 관심과 고민으로 작품을 만들어 왔는지 보여준다. ‘스카이웨일즈: 모든 마음은 노래한다’(2024)는 2013년 작가가 진행한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 기록 영상이다. 작가는 고래와 닮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높이 약 34m, 길이 23m에 달하는 초대형 열기구로 구현했다. 거대한 생명체가 하늘을 떠다니는 모습은 앞선 공간에서 만난 존재들을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옮겨놓는다. 피치니니의 작품 속 존재들은 완전하거나 독립적인 상태로 서 있기보다, 서로에게 기대며 불안을 견딘다. 낯선 생명체를 우리의 삶에 받아들이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오민범 수원시립미술관 관장은 “수원시립미술관은 여성주의와 돌봄, 공존의 문제를 동시대미술의 주요 의제로 다뤄 왔다”며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갈 관계와 책임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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