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총리 직행한 ‘북부의 왕’...“새 정치·경제모델 만들겠다” [더 비저너리-앤디 버넘 英 총리]
![한 달만에 총리 직행한 ‘북부의 왕’...“새 정치·경제모델 만들겠다” [더 비저너리-앤디 버넘 英 총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7/22/rcv.YNA.20260718.PAF20260717189801009_T1.jpg)
영국 ‘북부의 왕’이 총리가 됐다. 왕실이 내린 칭호는 아니다. 제조업 쇠퇴 이후 긴 침체를 겪은 영국 북부 주민들이 자신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정치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두 차례 패배하며 한때 ‘끝난 정치인’으로 불렸던 앤디 버넘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 맨체스터에서 다시 출발했다. 시장으로 재임하며 교통과 주택, 노숙인 정책을 손질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중앙정부와 맞서 북부 주민들의 생계를 대변했다. 그렇게 부활한 버넘은 20일(현지시간)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고 제59대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2024년 총선으로 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두 번째 총리이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10년 사이 일곱번째 총리다. 버넘은 이날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한 첫 연설에서 “지금은 자성과 새로운 결의의 시간”이라며 “국민은 정치에 신물이 났다.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을 ‘서킷 브레이커의 순간’이라고 규정하며 중앙집권과
브렉시트 이후 7번째 총리...초고속·무혈 입성 전화 엔지니어 아들로 태어난 에버턴 축구광팬 “국회 보좌관에 지원해 보라” 권유에 정계 입문 재무부·내무부 차관 거쳐 문화·보건장관 역임 당대표 선거 두 차례 고배...정치적 위기 맞아 맨체스터 시장 당선 8년...市 교통망 개혁 주도 “연내 10년 계획 발표” 취임일성 지방분권 추진 첫 시험대는 트럼프...’북해 유전 개방’ 압박도 영국 ‘북부의 왕’이 총리가 됐다. 왕실이 내린 칭호는 아니다. 제조업 쇠퇴 이후 긴 침체를 겪은 영국 북부 주민들이 자신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한 정치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두 차례 패배하며 한때 ‘끝난 정치인’으로 불렸던 앤디 버넘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 맨체스터에서 다시 출발했다. 시장으로 재임하며 교통과 주택, 노숙인 정책을 손질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중앙정부와 맞서 북부 주민들의 생계를 대변했다. 그렇게 부활한 버넘은 20일(현지시간)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정부 구성 요청을 받고 제59대 영국 총리로 취임했다. 2024년 총선으로 집권한 노동당 정부의 두 번째 총리이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10년 사이 일곱번째 총리다. 버넘은 이날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한 첫 연설에서 “지금은 자성과 새로운 결의의 시간”이라며 “국민은 정치에 신물이 났다.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을 ‘서킷 브레이커의 순간’이라고 규정하며 중앙집권과 민영화에 의존해온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연내 향후 10년간의 국가계획을 발표하고 지방분권과 재산업화, 생활비 부담 완화, 공공주택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영국 정치의 중심은 언제나 런던이었다. 총리는 웨스트민스터에서 탄생했고, 권력은 화이트홀에 집중됐다. 웨스트민스터가 아닌 맨체스터에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총리까지 오른 버넘의 등장은 영국 정치의 무게중심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엔지니어子→英정치지도자...버넘 키운 축구·노동자삶 버넘은 1970년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에인트리에서 태어나 체셔주 컬체스의 단층 주택에서 자랐다. 전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병원 접수원으로 일한 어머니 밑에서 세 아들 가운데 둘째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축구였다. 평생 에버턴 FC의 팬으로 살아온 그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에도 축구와 크리켓을 즐겼고, 대학신문 ‘바시티’에서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축구와 가라테, 크리켓 관련 기사를 썼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경기장을 찾을 만큼 축구 사랑이 각별하다. 영국 언론은 그를 ‘축구장에서 시민을 만나는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정치에 눈을 뜬 계기는 의외였다. 1980년대 BBC 드라마 ‘보이즈 프롬 더 블랙스터프(Boys from the Blackstuff)’였다. 마거릿 대처 정부 시절 대량 실업으로 무너지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버넘은 영국 GQ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과 함께 매회 이 드라마를 봤고, 그때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노동당에 입당한 그는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폐간된 지역신문 ‘미들턴 가디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2년 런던으로 건너가 출판사에서 ‘탱크 월드’와 ‘컨테이너 매니지먼트’ 같은 산업 전문지를 담당했다. 이곳에서 노동당 의원 테사 조웰의 의붓딸 엘리너 밀스를 만났고, 술자리에서 “국회 보좌관에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우연처럼 시작된 이 인연은 버넘의 정치 인생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차기 총리감서 ‘끝난 정치인’...맨체스터가 살린 버넘 1990년대 중반 노동당에 합류한 버넘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를 중심으로 ‘뉴 레이버(New Labour)’를 내세우며 정권 교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버넘은 테사 조웰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 실무를 익혔고, 이후 문화부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며 중앙정부 경험을 쌓았다. 2001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무부 정무차관을 시작으로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 재무부 수석차관, 보건장관 등을 잇달아 맡았다. 특히 보건장관 시절에는 국민보건서비스(NHS) 개혁과 신종플루 대응을 지휘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불과 서른 후반에 주요 부처 장관을 맡은 그는 노동당 내부에서 차기 지도자로 꼽히는 ‘젊은 피’였다. 하지만 정치 인생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2010년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데이비드 밀리밴드와 에드 밀리밴드 형제에게 밀렸고, 2015년에는 제러미 코빈에게 패했다. 두 번의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2017년 버넘은 웨스트민스터를 떠나 광역 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 초대 직선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영국 정치권은 의아하게 바라봤다. 장관까지 지낸 정치인이 지방정부로 내려가는 것은 사실상 중앙정치에서 밀려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넘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사람들이 정치를 믿지 않는 이유는 정치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는 시민이 사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시장으로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의외로 교통이었다. 당시 맨체스터 버스는 민영회사들이 각각 노선과 요금을 운영해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회사마다 요금이 달랐고 환승 체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버넘은 이를 런던처럼 하나의 공공 교통망으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비 네트워크(Bee Network)’였다.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꿀벌(Bee)에서 이름을 따온 이 정책은 버스와 트램, 자전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고 하나의 요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 민영화됐던 버스 체계를 지방정부가 다시 관리하겠다는 시도는 영국에서도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비 네트워크는 영국 지방정부 교통정책의 대표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고,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모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숙인 정책도 과감하게 손봤다. 취임 직후 거리 노숙을 줄이기 위한 ‘에브리원 인(Everyone In)’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지방정부와 자선단체, 민간기업을 함께 참여시키는 협력 모델을 구축했다. 버넘은 “노숙인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강조하며 주거 지원을 확대했다. 이런 생활밀착형 정책은 ‘행정을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코로나에 시민 대표로 앞장...‘북부 왕’이 탄생한 순간 버넘을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만든 결정적인 사건은 코로나19였다. 2020년 가을, 보리스 존슨 정부는 잉글랜드 북부에 가장 강력한 봉쇄 조치를 추진했다. 버넘은 봉쇄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봉쇄를 한다면 시민들이 먹고살 수 있는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는 추가 지원을 거부했다. 버넘은 생중계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맨체스터 시민의 삶은 런던 시민보다 덜 소중하지 않다” “북부는 정부에 구걸하는 지역이 아니다” 기자회견은 영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정부와 지방시장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BBC와 스카이뉴스는 그의 기자회견을 주요 뉴스로 다뤘고, SNS에서는 “우리를 대신해 말해주는 정치인”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가디언은 버넘을 “북부의 목소리”라고 불렀고, 정치권에서는 ‘킹 오브 더 노스(King of the North)’라는 별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버넘에게 중앙정부에 맞서 시민 편에 선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그 신뢰는 지방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총리 후보로 두 번 실패했던 정치인은 그렇게 다시 영국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궐선거 당선 한 달 만에 다우닝가로...초고속 입성 버넘이 총리로 가는 마지막 길은 빠르게 열렸다. 2024년 7월 총선에서 노동당을 압승으로 이끌며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스타머 전 총리는 집권 이후 잦은 정책 철회와 국정 비전 부족, 인사 오판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지방선거에서는 우익 영국개혁당에 밀리며 참패했고, 노동당 내부에서는 2029년 차기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내 사임 압박이 거세지자 스타머는 결국 총리직과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버넘이 당시 하원의원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영국 총리가 되려면 통상 하원의원 신분으로 집권당을 이끌어야 한다. 버넘은 지난달 18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9년 만에 하원으로 돌아왔다. 복귀 이후의 과정은 초고속이었다. 버넘은 노동당 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며 당대표 경선에 단독 출마했고, 지난 17일 런던에서 열린 특별 당대회에서 노동당 대표로 공식 선출됐다. 총선 없이 총리가 교체된 것은 영국 의원내각제의 특성 때문이다. 의회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집권을 유지하는 한 당대표가 바뀌면 새 대표가 총리를 맡을 수 있다. 버넘은 노동당 의원 379명과 23개 연계 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경쟁 후보 없이 대표로 선출된 그는 사흘 뒤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성했다. 블레어 전 총리의 사임 이후 경선 경쟁 없이 총리 자리를 넘겨받았던 브라운 전 총리와 비슷한 방식이다. “국민 숨통 틔우겠다” ‘북부 왕’ 앞에 놓인 첫 시험대 20일 공식 취임한 버넘 총리의 첫 정상 통화 상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두 정상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과 중동 정세, 국방·안보 협력, 세계 공급망 안정 등을 논의했다. 버넘은 트럼프가 영국을 방문하면 맨체스터를 직접 안내하고 싶다는 뜻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버넘이 넘어야 할 첫 외교 시험대다. 트럼프는 지난달 버넘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들었다”며 북해 유전 개발 중단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취임일에는 “북해 유전을 완전히 개방해야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버넘에게 취임 첫날 경고장을 보낸 곳은 금융시장이었다. 버넘이 기존 정부의 재정준칙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허용되는 유연성을 활용하겠다”고 밝히자 영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파운드화도 약세를 보였다. 소득세 비과세 기준선 인상과 사회복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이 정부 지출과 차입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영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8bp 오른 5.04%를 기록했다. 독일과 미국 10년물 금리 상승폭이 각각 2bp와 4bp였던 것과 비교해 움직임이 컸다. 30년물 국채 금리도 9bp 오른 5.75%로 두 달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운드화는 버넘의 발언 이후 하락했다가 존 힐리 전 국방장관이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그러나 달러 대비로는 0.17% 내린 1.3429달러에 거래됐다. 영국 국채 금리는 이미 주요 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높은 국가부채와 목표치를 웃도는 물가, 2022년 리즈 트러스 정부의 ‘미니예산 사태’에 대한 기억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새 정부의 재정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재너스헨더슨의 올리버 블랙번 멀티에셋 매니저는 버넘 정부의 정책이 차입을 늘릴 가능성에 대비해 영국 국채 비중을 줄였다고 밝혔다. 맨체스터에서 생활밀착형 정책으로 신뢰를 얻은 버넘은 이제 국민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약속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북부의 왕’에게 취임 첫날 시장이 던진 질문은 맨체스터의 성공 모델을 영국 전체로 확대하면서 그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지연 기자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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