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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에서 ‘즐기겠다’로...일본 스포츠의 ‘근성’이 변한다

‘죽을 각오’에서 ‘즐기겠다’로...일본 스포츠의 ‘근성’이 변한다
Source:chosun

죽을 각오에서 즐기겠다로일본 스포츠의 근성이 변한다 모든 선수가 응원 미담일까 조직을 위한 인내가 변한다

일본 여름의 대표 행사 중 하나가 고교 야구다. 6월 말부터 49개 지역에서 예선전을 거친 고교 팀들은 8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구장(阪神甲子園球場)에서 진홍색 우승기를 놓고 겨룬다.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 정식 명칭이지만, 보통은 ‘여름 고시엔’이라고 부른다. 봄에 열리는 선발고교야구대회가 출전 학교를 심사해 선발하는 것과 달리, 여름 대회는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학교만이 출전할 수 있어 더욱 치열하다. 1915년에 시작되어 올해 108회를 맞았고, 전국에서 3363팀이 참가하고 있다. 일본의 도도부현은 47곳이지만 학교와 인구가 많은 도쿄는 동·서도쿄, 홋카이도는 북·남홋카이도로 나뉘기 때문에 모두 49개 지역 대표가 고시엔에 진출한다. 올해 대회는 8월 5일부터 22일까지 열리며, 일본고교야구연맹과 아사히신문사가 공동 주최한다. 참가 팀은 지난해보다 33팀 줄었는데, 저출생과 야구 인구 감소의 영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모교인 도쿄도립 고야마다이고등학교(小山台高校) 경기를 보고 왔다. 공립 고등학교로서는 강한 편으로, 2018년과 2019년에는 동도쿄 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사립 야구 명문고들이 전국 각지에서 유망 선수를 모으고 전용 운동장과 기숙사까지 운영하는 일본 고교 야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입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도립학교가 지역 예선 결승까지 올라간 것은 상당한 성과다. 관전한 1회전에서도 모교가 이겼고, 이후에도 승리를 이어갔지만 5회전에서 힘이 다했다. 아쉬웠다. 첫 경기 응원석을 보니 벤치에 들지 못한 야구부원, 선수들 부모, 브라스밴드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 고교 야구에서는 경기장 응원도 하나의 중요한 학교 행사다. 취주악(吹奏樂)부가 연주하고 치어리더와 재학생이 구호를 맞추며, 벤치에 들지 못한 야구부원들도 유니폼 차림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포수 뒤쪽의 일반석도 거의 만원이었다. 일본에는 고교 야구 팬이 여전하다. 고교 시절에는 럭비부였던 탓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간 적은 없었지만, 기자로서는 여러 차례 야구 취재를 해왔다. 아사히신문사는 여름 대회 주최사여서 지방 주재 기자 시절에는 출전 팀에 관한 스토리와 경기 결과, 선수 이야기를 써왔다. 대회 기간에는 승패뿐 아니라 선수 가족사, 부상 극복 과정, 감독과 선수의 인연, 지역 주민 응원처럼 경기를 둘러싼 ‘청춘 이야기’도 중요한 기사 소재가 된다. 신문사가 고교 야구 대회를 주최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 언론사가 보기엔 기묘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스포츠와 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역할을 신문사와 방송사가 맡아온 역사가 있고, 고교 야구에 한정되지 않고 축구, 배구, 취주악 콩쿠르, 합창 콩쿠르 등을 주최해 왔다. 신문 판매 전략도 겸하고 있어 지방 대회가 시작되면 신문 판매 부수가 늘어났다. 자기 고장의 학교와 선수 이름이 신문에 실리고 경기 결과가 자세히 보도되면 지역 독자들 관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종이신문뿐 아니라 인터넷과 동영상 중계로 무대가 넓어졌다. 올해는 3000경기가 넘는 지방 대회가 ‘버추얼 고교 야구’를 통해 무료로 생중계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NHK가 전국 대회를 전 경기 중계한다. 지상파 방송이 오전부터 저녁까지 고교 경기를 편성하고, 채널을 옮겨가면서도 경기를 끝까지 중계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최근에는 BS아사히와 인터넷 서비스도 전 경기를 중계하거나 무료로 전송하면서 고시엔은 방송과 디지털을 아우르는 거대한 여름 콘텐츠가 됐다. 고교 야구가 국민적 행사가 된 것은 대중의 향토애를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 대회는 도쿄와 홋카이도가 각각 2개 지구로 나뉘고, 나머지 45개 부현에서는 대표 학교가 한 학교씩 뽑힌다. 고시엔 본대회에 모교가 출전하면 휴가를 내고 응원하러 가는 직장인도 있고, 고향 지역 학교가 승승장구하면 텔레비전 응원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프로야구처럼 선수의 연고가 자주 바뀌는 것도 아니어서, 학교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대표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지난해 결승전은 오키나와쇼가쿠고교(沖縄尚学高校·오키나와)와 니혼대학 제3고교(日本大学第三高等学校·서도쿄)가 맞붙어 오키나와쇼가쿠가 우승했다. 이때 NHK 텔레비전의 평균 가구 시청률은 오키나와 지역에서 46.3%를 기록했고, 순간 최고 시청률은 50%를 넘었다.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같은 경기를 지켜본 셈이다. 차량 통행량이 줄고 길을 걷는 사람도 적었다고 한다. 고시엔에서 지역 대표가 결승에 오르는 날이면 도시 전체의 일상이 잠시 멈춘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고교 야구 사랑은 향토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야구 소년들의 한결같은 플레이가 보는 사람들에게 ‘산뜻한 인상’을 준다. 공수 교대 때는 전력 질주하고, 경기 시작과 종료 때의 인사도 예의 바르고 상쾌하다. 심판과 상대 팀, 경기장에 경의를 표하는 태도는 일본 고교 야구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규율이기도 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몸짓에는 고교 야구 문화가 남아 있는 듯 보인다. 타석과 마운드에서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고, 경기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거나 상대 선수와 심판에게 예를 갖추는 태도에서 일본식 야구 교육의 흔적을 발견하는 사람이 많다. 오타니 선수는 하나마키히가시고등학교 선수로 2011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다. 고교 야구 강호 중에는 100명이 넘는 야구부원을 거느린 학교도 드물지 않다. 한 학년에 수십 명씩 입부하지만 공식 경기의 벤치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 수는 제한돼 있다. 정규 선수로 선발되지 못하고, 유니폼을 입고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선수도 많다. 3년 동안 한 번도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고교 야구 생활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마운드에 서지 못하는데도 동료 선수의 승리를 위해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개인보다 팀을 중시하는 자기희생의 미담으로 언론이 앞다투어 다뤄왔다.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물을 나르고 장비를 정리하며 주전 선수를 뒷받침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묘사됐다. 개인의 좌절보다 공동체를 위해 참고 견디는 태도를 아름답게 여기는 일본 사회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런 청춘 이야기를 써왔던 나에게 충격이라고 할 만한 경험이 있다. 미국 특파원 시절이었다. 현지 공립 고교에 진학한 장남이 학교 축구팀에 들어가려고 ‘트라이아웃’이라는 입부 테스트를 받았다. 일본의 학교 운동부가 대체로 희망자의 가입을 폭넓게 허용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학교 대표팀은 시즌을 앞두고 공개 선발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방학 중 사흘 동안 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지원자들은 각자의 축구 기술과 체력을 테스트받았다. 당일 테스트가 끝나면 지도자가 지원자를 걸러내 탈락시키는 구조였다. 지원자 100명가량 중 마지막에 남은 것은 20명이었고, 이들로 그해의 팀이 결성됐다. 아들도 팀에 들어갔다. 일본의 학교 교육에서는 과외 활동을 희망하는 학생은 가능한 한 모두 받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식은 일정 수준 이상 학생만으로 학교 대표팀을 꾸린다. 탈락한 학생은 다른 종목이나 학교 밖 지역팀을 찾는다. 미국에서는 학교 스포츠가 계절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가을에는 축구, 겨울에는 농구, 봄에는 야구나 육상처럼 여러 종목에 도전할 기회도 비교적 많다. 그들은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선수가 많은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활약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선수를 한 팀에 계속 남겨두기보다는 자신의 실력에 맞는 다른 팀이나 다른 종목에서 실제 경기에 나설 기회를 주는 편이 낫다는 사고다. ‘성공’하기 위한 ‘기회(chance)’를 중시하는 나라의 풍토일 것이다. 미국식 시각으로 다시 일본 고교 야구를 본다. 일본 스타일은 정말로 선수 개인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일까. 많은 선수를 거느린 유력 학교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걸까. 다른 학교에 갔다면 라이벌이 되었을지도 모를 선수를 묶어 두는 건 아닌가. 마치 ‘가이코로시(飼い殺し)’ 같다. 가이코로시는 본래 동물을 죽이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가둬 기른다는 뜻으로, 사람의 능력이나 재능을 활용하지 않은 채 조직 안에 묶어 두는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고교 야구는 물론, 일본 스포츠에서 가장 강조돼 온 것은 ‘근성’과 ‘인내’다. 지도자는 선수에게 “죽을 각오로 해라” “도망치지 마라”고 말하고, 의욕이 없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수에게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이 가해지기도 했다. 훈련 중 물을 마시면 정신력이 약해진다거나, 통증을 참고 운동하는 것이 훌륭한 선수의 자세라는 잘못된 믿음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신문사에서 퇴직한 뒤 스포츠계 대학에서 교원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당시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 고교 시절에는 전국 수준으로 활약했던 선수들 상당수가 대학에서는 운동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교 시절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몸에 이상이 생겨도 지도자에게 “죽을 각오로 하라”는 채근을 받고, ‘근성’으로 버티며 운동을 계속한 결과였다. 당장의 대회 성적을 위해 통증을 숨긴 채 훈련과 경기를 반복하다가 어깨나 팔꿈치, 무릎과 허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은 것이다. 특히 성장기의 선수는 성인과 몸 상태가 다른데도 충분한 휴식과 의학적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도자는 선수를 단련시켰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학교의 명예를 위해 선수가 ‘쓰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 듯 보였다. 전국 대회 진출과 우승은 감독과 학교의 실적으로 남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둔 선수의 삶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팀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이 선수의 건강과 장래를 외면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면 일본 사회는 “죽을 각오로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근성’의 정신문화가 관통하고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장시간 노동을 미덕으로 여겼고, 어려운 목표도 정신력과 인내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은 상사의 명령에는 거스를 수 없다는 가부장제 같은 기업 풍토다. 과중 노동에 따른 과로사나, 상사에 의한 파워하라(パワハラ), 세쿠하라(セクハラ)가 표면화되는 일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파워하라’는 지위나 권한의 우위를 이용해 부하 직원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는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한다. ‘세쿠하라’는 성적인 언행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불이익을 주는 성희롱을 가리킨다. 일본식 영어 표현이지만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됐다. 일본 기업도 이제는 근성과 인내만으로 국제 경쟁에서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시에 복종하고 오랜 시간 일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젊은 직원이나 연구자의 의욕, 즉 모티베이션을 높이기 위한 궁리를 하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실패를 허용하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정부도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働き方改革)’을 추진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연차휴가 사용을 늘리며, 육아와 일의 양립,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등을 확대하자는 정책이다. 단순히 근무 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이 개인의 희생에 의존해 성과를 내던 방식을 바꾸자는 시도이기도 하다. 스포츠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결사의 각오’로 임하던 선수들이 “즐기고 오겠습니다”라고 미소 짓는 때가 왔다. 과거에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가 즐기겠다고 말하면 긴장감이나 투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즐거움이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고, 선수가 스스로 판단할 때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선수의 자율권을 중시하는 스포츠 교육이 침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고시엔 야구 대회에서도 선수를 엄격하게 키우는 ‘귀신 감독’보다는 칭찬하며 키우는 감독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감독이 모든 작전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 선수들과 대화하고, 선수 스스로 훈련 방법과 경기 전략을 생각하게 하는 팀도 늘고 있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들여다보니 지역 초등 야구팀끼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선수를 질책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감독이 웃는 얼굴로 선수를 격려하고 있었다. 실수한 선수를 공개적으로 꾸짖거나 벌을 주는 대신, 실패의 원인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는 모습이었다. 옆에 있던 한 학부모가 이렇게 설명해줬다. “실패하면 경기 뒤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같은 실패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함께 생각하면서 팀을 키우고 있습니다.” 선수가 감독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게 한다는 뜻이었다. 이 팀은 초등생 전국 대회에서 우승한 강호였다. 질책과 공포가 없어도, 오히려 선수의 판단과 자율성을 존중할 때 강한 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일본 청소년 스포츠가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이젠 선수를 팀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장하는 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기는 법과 함께 쉬는 법, 견디는 법과 함께 그만두거나 다른 길을 선택하는 법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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