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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숫기 없는 여행자도 춤추게 한다

축제, 숫기 없는 여행자도 춤추게 한다
Source:kmib ↗

지난달 말, 나는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로 향했다. 옥토버페스트는 2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민속·맥주 축제다. 여성용 드레스 ‘디른들’과 남성용 가죽 바지 ‘레더호젠’을 입은 사람들이 1ℓ짜리 대형 맥주잔 ‘마스’를 들어 올리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축제장은 거대한 ‘맥주 테마파크’ 같았다.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유명 양조장 텐트와 소형 안주 텐트를 성지 순례하듯 찾아다녔다. 불과 2시간 전 기차 안에서만 해도 나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대하던 풍경을 마주하니 그 마음은 어색한 이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통 의상을 입지 않은 사람은 나와 같은 ‘준비성 부족한 관광객’이나 경찰뿐이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맥주 텐트 주변만 쭈뼛쭈뼛 맴돌았다. 아무리 낯가림이 없다고 한들, 똑같이 옷을 맞춰 입은 외국인들 사이에 들어가 “여기 맥주 한 잔이요!”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던 그때, 전통 의상 디른들에 하트 모양 명찰까지 단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영어로 “혼자 왔어?”라고 묻는데, 유명 한국 영화 속 대사가 떠올라 픽 웃음이 났다. 그 웃음에 긴장이 조금 풀린 나를 직원이 안내한 곳은 독일 중년 남성 5명의 테이블이었다. ‘옷은 못 맞춰 입었어도 술잔은 맞춰야지’ 하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1ℓ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직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팁 5유로를 선뜻 쥐여 줬다. 합석한 독일인들은 이방인인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어디에서 왔는지, 뮌헨은 어떤지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은 건배할 때 ‘건배!’라고 하고, 독일은 눈을 마주친다” 정도의 가벼운 대화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텐트 안에 울려 퍼지는 밴드 연주와 소음, 답변마다 이어지는 건배 속에서 영어 듣기 평가의 난도는 급격히 올라갔다. 결국 나는 대화를 포기했다. 그저 모나리자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건배할 때마다 성실하게 잔을 들어 올리는 이방인이 되었다. 밤 10시가 넘어 밴드의 마지막 연주가 흐를 때쯤엔 부끄러움도 잊은 채 가사도 모르는 노래를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다음 날에는 후회스러운 기분도 들었지만, 숫기 없는 내가 홀로 축제를 다녀왔다는 점은 뿌듯했다. 혼자서 축제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태국 ‘송크란’ 때문이다. 송크란은 태국 전통 설인 4월 13일을 전후해 열리는데, 액운을 씻어내는 의미로 물을 뿌리던 전통이 지금은 대형 물총 싸움 축제가 됐다. 나는 지난 4월,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방콕을 여행하다가 송크란을 경험했다. 당시의 추억이 그립기도 했고, 여행 경험이 조금 더 쌓인 만큼 전보다 더 능동적으로 축제를 즐겨 보자는 생각에 뮌헨까지 찾아간 것이다. 처음부터 송크란을 제대로 즐겼던 건 아니었다. 방콕 전체가 송크란으로 들썩이고 있어 궁금하긴 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물총을 사 봤자 제대로 쏘지도 못할 것 같아 단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국인이 많이 찾는 카오산로드 근처 호스텔에 머문 것이 기적 같은 한 수였다. 송크란 첫날 아침, 라운지에 앉아 휴대전화로 맛집을 검색하다 한 서양인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청년의 미소에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너 오늘 송크란 가니?” 그는 “물론이지. 괜찮으면 너도 같이 가자”고 화답했다. 그렇게 나는 영국과 스위스에서 온 친구들과 통성명만 마친 채 ‘다국적 송크란 원정대’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가 찾아간 방콕 실롬 거리와 센트럴월드 일대에서는 물총을 쏘는 것이 곧 인사였다. 4월의 푹푹 피어오르는 무더위 속에 가뭄의 단비 같은 인사였다. 가끔 얼음물 벼락을 맞을 때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나는 연신 “악!” 소리를 질렀고, 영국 친구는 “Wait!(잠깐만)”으로 추정되는 “오잇”을 연발했다. 스위스 친구는 영세 중립국 출신답게 물벼락이 쏟아지면 아무런 저항 없이 두 팔을 벌려 받아냈다. 목이 말라 딴 캔맥주에 흙탕물이 들어가도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는 물세례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 거리를 온종일 누볐다. 자정이 가까워 거리 축제가 끝난 후에도 흥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물총을 쏘지 않는 새벽녘까지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울려 퍼지는 케이팝에 맞춰 ‘괴상한’ 춤을 췄다. 오전 11시에 나갔던 3인방이 호스텔로 돌아온 시간은 다음 날 새벽 3시였다. “내일 또 가자!”며 복도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해가 진 저녁 7시쯤에야 겨우 눈을 떴다. 영국에서 온 스물두 살 제이크는 옥스퍼드 대학생이었고, 그보다 한 살 많은 스위스 친구 팀은 복싱과 무에타이, 주짓수를 섭렵한 무술인이었다. 연령대도 국적도 다른 생면부지 20대 청년들과 어울려 하루 종일 물총 싸움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춤까지 췄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신호등에 녹색불이 켜져야만 길을 건너고, 쓰레기통을 찾지 못하면 주머니에 넣어 집까지 가져오던 나에게 그날의 송크란은 거대한 일탈이었다. 일상의 나에게서 벗어나 전혀 다른 내가 돼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축제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축제가 허락하는 선에서 나를 온전히 내려놓다 보면 뜻밖의 인연을 선물처럼 만나기도 한다. 일탈의 해방감을 찾아온 이들은 타인에게 마음을 좀 더 열기 때문이다.만약 지금 선택의 여유가 있어 여행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면 축제로 눈을 돌려 보자. 흥미를 끄는 낯선 소란 속으로 몸을 던져 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일탈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뮌헨·방콕=글·사진 이영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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