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약해진 건 나이 탓이 아니다... 몸의 ‘통신체계’ 바로 잡는 법

의지가 약해진 건 나이 탓이 아니다 몸의 통신체계 바로 잡는 법 MOGI 호르몬 잡아라 몸이 달라진다 무기력과 나잇살, 달라진 성격 노화로 인해 호르몬 체계에 혼선
나이가 들면 몸의 이곳저곳이 예전 같지 않다. 밤에 잠을 청하려 해도 눈이 말똥말똥하고, 낮에는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거나 입맛이 없는데도 나잇살이 붙는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 별일 아닌 것에 서운해지기도 한다. 많은 이가 이러한 변화를 마주할 때 그저 ‘나이 탓’이려니 하거나, 내가 옛날보다 ‘의지력’이 약해져서 그런가 싶어 서글픈 마음을 갖곤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병원에서 환자들을 마주해 온 내분비내과 의사의 눈으로 보면, 이는 결코 개인의 의지나 성격 탓이 아니다. 우리 몸속의 보이지 않는 무선 통신망, 즉 ‘호르몬 체계’에 혼선이 생겼다는 몸의 정직한 비명이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공장들도 노화해 신호 물질의 양이 줄어들거나, 신호를 받아들이는 세포가 뻑뻑해져 문이 잘 열리지 않게 된다. 잠을 부르는 멜라토닌이 줄어드니 잠이 부족해지고, 활력을 주던 성호르몬이나 갑상선 호르몬이 감소하니 마음이 우울하고 기운이 안 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흔히 뇌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나의 고차원적인 ‘자아’가 행동과 감정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인간이 매일 느끼는 기분, 수면, 기운 그리고 건강의 기저에는 언제나 피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화학 물질인 호르몬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내가 왜 이리 피곤한지, 잠을 못 이루는지, 갑자기 슬퍼지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이는 ‘호르몬’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호르몬을 이해하자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 몸은 왜 하필 이 호르몬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선택해 스스로를 조절해 온 것일까?’ 우리는 뜨거운 물건에 손이 닿으면 0.1초 만에 팔을 떼게 된다. 이는 뇌의 판단이나 명령을 거치기도 전에 일어나는 반사 작용으로, 척수와 신경 세포가 보내는 번개처럼 빠른 전기 신호 덕분이다. 이처럼 우리 몸의 신경계는 정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전달하는 ‘초고속 정보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목적지가 명확하고, 전달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며, 볼일이 끝나면 신호는 즉시 사라진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또 하나의 통신망이 존재한다. 호르몬은 순식간에 전류를 흘려보내는 신경계와 달리, 특정 세포에서 만든 화학물질을 피(혈액) 속에 섞은 뒤 온몸으로 느릿느릿 흘려보낸다. 비유하자면 아날로그적인 화학 통신 방식이라 하겠다. 우리 몸이 신경계와 호르몬을 함께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옛날, 지구에 처음 나타난 원시 생물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초기 단세포 및 다세포 생물에게는 ‘뇌’나 ‘척수’ 같은 정교한 신경계 고속도로가 없었다. 그들이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세포 간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세포 밖으로 특정 화학물질을 분비해 주변으로 천천히 확산시키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훗날 호르몬으로 발전한 화학적 신호 전달 방식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흘러 생물이 진화하면서 포식자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순식간에 반응하는 신경계가 새로 발달했지만, 우리 몸은 조상들이 쓰던 고대의 화학 통신 시스템을 버리지 않았다. 경계는 매우 빠르지만 국소적이고 순간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반면 혈액을 타고 흐르는 호르몬은 비록 느릴지언정 온몸의 세포에 동시에 광범위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성장·면역·대사 조절처럼 수 시간에서 수개월에 걸쳐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즉각적인 위협 대처는 신경계가 맡고, 몸 전체의 장기적인 균형(항상성)은 호르몬이 담당하는 정교한 분업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결국 호르몬은 뇌가 없던 암흑의 원시 시절부터 생명을 지켜온 가장 오래된 통신망이자, 오늘날까지 우리 몸의 생명 활동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위대한 원시의 유산’인 셈이다. 인체가 초고속 인터넷망 같은 신경계를 두고도 이 느린 호르몬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놀라운 ‘에너지 절약 지혜’가 숨어 있다. 만약 모든 조직을 신경만으로 조절하려 했다면 인간의 몸은 무거운 신경 다발로 가득 차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인체는 기가 막힌 무선 통신 기법을 선택한다. 신경계가 집집마다 직접 연결하는 ‘전화선’이라면, 호르몬은 공중으로 신호를 쏘아 보내는 ‘라디오 방송’과 같다. 호르몬은 새로운 길을 뚫을 필요 없이, 이미 온몸을 흐르고 있는 핏줄(혈관)이라는 기존 고속도로를 그대로 공유한다. 핏줄에 호르몬이라는 무선 신호를 슬쩍 태워 보내면, 전신의 세포 중 그 호르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안테나(수용체)’를 가진 세포들만 알아서 선택적으로 반응한다. 참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또한 신경계의 전기 신호는 번개처럼 빠르지만 0.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반면 밤새도록 일정하게 혈당을 유지하거나, 몇 달에 걸쳐 체온을 맞추는 일에는 은근하고 끈질긴 신호가 필요하다. 혈액 속에 머물며 며칠 동안 은은하게 지속적인 명령을 내리는 일, 그리고 위급한 순간에 단 한 번의 분비로 심장과 혈관, 근육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전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은 오직 호르몬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인슐린, 티록신, 코르티솔 등 복잡한 이름의 호르몬이 수없이 존재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하나의 핏줄’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국들이 서로 다른 주파수를 써야 방송이 겹치지 않듯, 각각의 호르몬은 서로 다른 수용체를 인식하도록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열쇠와 자물쇠’의 원리와 같다. 밥을 먹고 나면 췌장에서 ‘인슐린’이라는 열쇠가 분비되는데, 이 열쇠는 오직 인슐린 수용체를 가진 간과 근육, 지방세포에만 정확히 결합한다. 덕분에 피 속에 수십 가지 호르몬 열쇠가 마구 뒤섞여 흘러다녀도, 자기 짝이 아닌 세포의 문은 절대 열지 않는다. 만약 이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면, 혈당을 낮춰야 하는 순간에 주파수가 겹쳐 갑자기 심장이 뛰거나 체온이 올라가는 대혼란이 생겼을 것이다. 몸속 호르몬의 숫자가 많은 것은 통신의 정확성을 지키면서도 명령의 강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기 위한 인체의 정교한 솔루션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 믿으며 고차원적인 자아가 삶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결국 피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화학 분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사랑에 빠져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은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온몸을 장악했을 때이며, 매사에 의욕이 없고 회색빛으로 보일 때는 세로토닌의 주파수가 낮아졌을 때다. 나이가 들며 성격이 온화해지거나 반대로 날카로워지는 것 역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 농도의 변화 때문이다. 따라서 내 몸의 호르몬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작동하는 가장 원초적인 소통 규칙을 배우는 일과 같다. 비록 우리는 신경계처럼 강제로 스위치를 켜고 끌 수는 없지만,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적절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로 호르몬이 흐르는 내부의 강물을 깨끗하게 가꿀 수는 있다. 인간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몸 안의 보이지 않는 강물을 지배하는 호르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나를 지배하는 호르몬의 균형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것에서부터, 노년의 건강하고 품격 있는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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