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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약하더라도... 병 이겨내는 ‘기쁨 수명’을 아십니까

육신은 약하더라도... 병 이겨내는 ‘기쁨 수명’을 아십니까
Source:chosun

육신은 약하더라도 병 이겨내는 기쁨 수명을 아십니까 내면의 밝기와 태도로 결정되는 기쁨 수명 건강 수명과는 다른 개념

진료실을 찾는 80~90대 어르신들을 뵙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한다. 살아오며 숱한 갈등과 번뇌를 겪은 뒤 인생의 성찰과 지혜, 즉 고유한 노하우를 하나쯤은 품고 있다. 서글픈 건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깨닫는 ‘득도’의 시점에 다다랐을 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그 깊은 깨달음은 가벼운 웃음이나 짧은 한탄, 무심코 던지는 짤막한 이야기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가족들에게조차 마지막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떠나시는 경우가 많다 보니, 90년 가까운 긴 인생에서 얻은 소중한 통찰력이 기록되지 않은 채 조용히 사라진다.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아쉬움에 진료실을 찾는 50대 말에서 60대 초반의 환자들에게 미리 이 진리를 전해보고자 시도할 때가 있다. 이제부터 행복은 이미 성취한 ‘양’보다, 인생에서 무언가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지표’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이다. 비록 질병이 생길지언정 건강의 다른 측면에서 개선점을 찾고, 남은 건강을 긍정의 발판으로 삼아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며 사회가 나를 찾게 만드는 것이 노년의 진짜 행복이라고 덧붙인다. 천천히 미리 준비해보자고 권해보지만 이 연령대 환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60대가 무슨 노인이냐, 한창이다”라며 손사래를 치거나, 젊은 시절의 잣대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반대로 “이미 병이 여럿 생겼으니 나이 들어가는 거지”라며 이른 체념에 빠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역시 시간이 흐르면 결국 먼저 떠나간 80~90대 어르신들과 비슷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연령대마다 친구들과 모였을 때 주로 나누는 대화 주제가 다르고 서로 부러워하는 대상이 달라지듯, 건강의 의미와 행복의 기준도 변곡점을 맞이하는 시기가 온다. 젊은 시절에는 많이 가진 자산과 성취를 부러워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자녀, 손주, 혹은 연금처럼 ‘미래에 지금보다 더 나은 걸 기대할 수 있는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즉, 지금 당장 손에 쥔 것 외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기대감, 결국 ‘희망’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 듦의 과정에서 건강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노화와 함께 신체적 건강은 점차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행복은 다르다. 다소 부족해진 건강이라도 이를 긍정의 발판으로 삼아 충분히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 심지어 건강이 온전치 않아도, 이를 어떻게 다스리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진다. 단순히 마음만 다잡는 이른바 ‘정신 승리’의 문제일까. 결코 아니다. 삶의 마지막 정점에서 어르신들이 보여준 통찰과 일맥상통하는 이 지점에서 바로 ‘기쁨 수명(Joy Span)’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미국 UC 어바인 노년학자 케리 버나이트 박사가 노년의 삶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강조한 기쁨 수명은, 단순히 질병 없이 생물학적으로 생존하는 건강 수명을 넘어 내 삶이 온전히 기쁨과 의미로 채워지는 시간을 뜻한다. 기쁨 수명을 늘리는 삶의 ‘밝기’는 현재 내가 쥐고 있는 성취의 양이 아니라, 과거보다 현재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속도와 방향’에 의해 좌우된다. 은퇴 후 상황이 예전보다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며 스스로를 계발해 나가는 과정이 있다면 삶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인정받을 때, 남들이 뭐라 하든 온전히 내가 나로서 작게라도 빛나는 순간들이 인생을 다시 빛나게 한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가치를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질병이 없고 신체적 능력이 완벽할 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분이 거동이 어려워질까 봐 두려워하지만,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몸이 불편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나로서 빛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기쁨 수명은 신체적 상태가 아닌 내면의 밝기와 태도를 포함한다. 비록 병이 있고 몸이 불편해도 우리는 충분히 그 기쁨에 도달할 수 있다. 작은 화분을 가꾸며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거나, 자녀와의 짧은 통화에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삶의 밝기는 충분히 유지된다. 물론, 건강이 중요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질병이 찾아오고 불운한 일이 닥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필요할 때는 주변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시 극복하고 자립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남은 노년의 건강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거대한 삶의 태도라는 맥락에서 파생된 작은 팩트 중 하나일 뿐이다.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어도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통제하며 나아지는 방향을 선택할 때, 우리 몸의 회복력도 함께 작동한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이 인정 욕구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부나 명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근원적인 마음이다. 사회적 직함이 사라지고 신체가 나약해져도, 서로 온기를 나누며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면 삶의 밝기는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인생의 통찰과 태도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결과를 의학적인 수치로 완벽하게 입증하기란 무척 힘들다. 내면의 밝기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치환하여 체계적인 연구를 설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정점에서 어르신들이 조용히 남기고 간 깨달음은 복잡한 통계 수치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사회에도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건강 수명’을 넘어, 삶의 밝기가 더해진 ‘기쁨 수명’이 진정으로 강조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확신한다. 국가 지표가 아닐 뿐, 우리의 삶은 이미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기쁨수명을 잃지 않고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는 이를 위해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이 특히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들에 대해 짚어보겠다.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나로서 빛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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