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난리 난 아토피 연고? 그럼 병원 약은요

아토피피부염 진료실에는 낯익은 풍경이 있다. 진료실 문이 열리면 보호자는 가방부터 연다. 가방에서는 이것저것이 줄줄이 나온다. 특정 유산균, 이름도 낯선 건강기능식품, 지인이 권했다는 천연 연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목욕 첨가제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정작 병원에서 처방받은 국소 스테로이드 연고는 거의 새것처럼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두 번 바르다 멈춘 것이다. 먼저 보여준 제품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아토피,난리,아토피피부염 치료,건강 아토피피부염,스테로이드제 부작용,아토피피부염,스테로이드제,김지현의 즐거운 건강,HEALTH
김지현의 즐거운 건강 아토피피부염 진료실에는 낯익은 풍경이 있다. 진료실 문이 열리면 보호자는 가방부터 연다. 가방에서는 이것저것이 줄줄이 나온다. 특정 유산균, 이름도 낯선 건강기능식품, 지인이 권했다는 천연 연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목욕 첨가제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정작 병원에서 처방받은 국소 스테로이드 연고는 거의 새것처럼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두 번 바르다 멈춘 것이다. 먼저 보여준 제품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묻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대로 처방받은 연고를 건네며 “괜찮은 약인가요”, “오래 바르면 위험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나 역시 내 아이 일이었다면 비슷했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생후 10개월 아이도 그랬다. 얼굴 전체가 붉게 짓물러 있었는데, 부모는 처방받은 약한 등급의 국소약을 하루 만에 중단했다. 대신 지인이 소개한 연고를 한 달 가까이 바르고 있었다. 성분도, 제조 과정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제품이었다. 위험은 처방약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고 쪽에 있었다. 이런 선택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의학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너무 걱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아이 피부가 붉어지고 진물이 나고 밤새 긁는 모습을 보면 부모 마음은 급해진다. 당장 좋아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진다. 그 마음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람은 불안할수록 숫자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다. “우리 아이는 이걸 쓰고 좋아졌어요”라는 경험담은 생생하다. 반면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은 멀게 느껴진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는 부작용 정보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해 보인다. 반대로 검증된 치료는 예상 가능한 부작용까지 모두 공개되어 있으니 더 위험해 보인다. 투명하게 검증된 치료일수록 더 의심받는 것이다. 스테로이드제 부작용 있지만 안전성 입증 국소 스테로이드제가 대표적인 예다. 피부 위축이나 모세혈관 확장 같은 부작용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맞지 않는 강도의 약을 장기간 사용하거나, 사용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을 때 나타난다. 반대로 피부 상태와 부위에 맞는 제제를 적절한 기간 사용하는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좋고 안전성도 충분히 입증되어 있다. 최근에는 재발이 잦은 부위에 주기적으로 바르는 선제적 치료(proactive treatment)도 널리 사용된다. 얼굴처럼 민감한 부위에는 국소 칼시뉴린 억제제 등 다양한 선택지도 있다. 중요한 것은 약의 이름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사용법이다. 아토피피부염 치료는 지난 10년 동안 크게 달라졌다. 중증 환자들에게는 생물학적 제제와 JAK 억제제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했다. 이 약제들은 승인되기 전 여러 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이상반응도 논문과 허가 문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약일수록 “너무 새로운 약이라 무섭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반면 근거가 거의 없는 제품에는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라는 기대를 품는다. 오래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충분히 검증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데도, 우리는 종종 두 개념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은 아토피피부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방접종은 이상반응이 걱정되어 미루면서 근거가 부족한 면역력 증진 제품은 쉽게 구입한다. 처방받은 항생제는 며칠 만에 중단하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제품은 몇 달씩 꾸준히 복용한다. 근거의 크기보다 익숙함과 주변의 경험담이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의학적으로 더 안전한 선택이 심리적으로는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역설이다. 물론 부모들을 탓할 수 없다. 지금은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니라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인터넷 검색 결과에는 개인 후기와 광고, 전문가의 설명, 국제 진료지침이 같은 화면에 나란히 등장한다. 모두가 자신이 맞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의료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아이가 아프면 부모의 판단은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작용 정보 없어 안전? 검증 덜 됐을 수도 그래서 진료실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약은 안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치료를 권하는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그 위험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함께 설명하는 일이다. 동시에 부작용 정보가 거의 없는 제품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해야 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안심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앞서 진료실에서 만난 아이는 적절한 강도의 처방약을 정확한 방법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진물은 멈췄고, 밤새 긁던 얼굴도 차츰 제 모습을 되찾았다. 바뀐 것은 특별한 신약이 아니었다. 무엇을 먼저 믿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었다. 좋은 의학은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검증을 거친 근거를 공개하고, 그 근거 위에서 함께 판단하자고 제안한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다. 그래서 더 새로운 것을 찾고, 더 특별한 것을 찾는다. 하지만 의학은 특별한 치료보다 충분히 검증된 치료를, 기적 같은 경험담보다 반복해서 확인된 근거를 믿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부모의 사랑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도, 그 근거를 믿고 아이와 끝까지 함께할 때가 아닐까. 김지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소아 알레르기 호흡기 질환을 진료하며 알레르기 예방 및 치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지현 교수가 알려주는 아토피와 알레르기의 모든 것』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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